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7일 경북 안동을 방문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도산서원을 방문해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 위패를 참배하고, 상하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李相龍) 선생 고택(古宅)인 임청각(臨淸閣)을 찾아 후손과 광복회원들을 만났다. 문 전 대표의 이번 안동 방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안동 방문(29일)을 이틀 앞두고 이뤄져 정치권에서는 대선 도전을 시사한 반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영남 구애 나선 문재인

문 전 대표의 경북 방문은 4·13 총선 이후 처음이다. 문 전 대표 측은 안동 방문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더민주 험지인 이곳을 묵묵히 지켜온 낙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경북을 찾는 길에, 선비 정신과 항일독립운동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들을 들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만난 반기문… 갓 쓰고 도포 입은 문재인 - 29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 선생 고택을 찾는 반기문(왼쪽 사진) 유엔 사무총장이 27일 일본 이세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며 대화하고 있다. 이날 문재인(오른쪽 사진)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안동에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을 찾았다. 도산서원에서 갓을 쓰고 도포 차림으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문 전 대표.

문 전 대표가 방문한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황은 대제학 등을 지냈지만 주로 안동에 머물며 류성룡, 김성일 등 영남 사림(士林)을 키웠다. 문 전 대표는 정조가 퇴계를 추모하며 과거시험을 열었던 시사단을 찾아 "이곳이 정조의 개혁 정치가 시작된 역사적 현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이어 안동의 명문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상룡 선생의 고택 임청각을 찾았다. 이상룡 선생은 재산을 팔아 만주,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그의 아들, 손자 역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더민주 이용득 비례대표 당선자가 이상룡 선생의 친척이다. 이번 문 전 대표의 방문 때도 이 당선자가 집안사람들을 소개했다고 한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이황·이상룡 선생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와 독립운동의 뿌리로서 영남 선비 정신을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안동, 유교 하면 보수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안동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했다"며 "혁신 유림이라고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표의 안동 방문을 반 총장의 안동 방문 계획과 비교하기도 한다. 반 총장은 29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을 찾을 예정이다. 반 총장이 류성룡을 통해 국민통합, 국난극복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대선 출마의 명분을 쌓으려 한다는 해석이 여권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 안동을 찾게 된 것에 대해 문 전 대표 측은 "한 달 전쯤 낙선자들을 위한 식사 일정을 잡았고, 함께 방문할 후보지 몇 개를 놓고 지역 관계자들과 협의한 끝에 도산서원과 임청각을 골랐다"며 "일부러 반 총장보다 먼저 안동을 찾으려 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대선 준비 속도 내는 야권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굳어지면서 야권의 대선 준비도 빨라지는 모양새다. 더민주는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체제로 확대 개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3선(選)의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은 지난 25일 연구원 워크숍에서 이러한 조직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민 원장은 27일 본지 통화에서 "야권(野圈)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민주정책연구원은 인수위 체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연구원을 정치개혁팀, 부동산팀, 가계부채팀 등 국정 과제별로 나눠 10~20여개 태스크포스(TF) 체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더민주 우윤근 전 원내대표와 노영민 의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과거 선거운동과 미국 대선의 '트럼프 현상'을 연구한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낙천한 이들은 문재인 대선 캠프가 꾸려지면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우 전 원내대표는 7월부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상징하는 '반(反)정치' 현상이 내년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검토한다는 구상이다. 우 전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가 하반기 방미(訪美)할 경우를 대비한 사전 준비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은 오바마 '선거 캠프'를 집중 분석할 계획이다. 2012년 대선 때 오바마 캠프의 '진실팀(truth team)'은 200만 지지자들의 참여를 통해 인터넷에서 공화당의 네거티브 공격을 막고 오바마의 핵심 메시지를 퍼트리는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