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 시각) 러시아 굴지의 국영기업 최고경영자들이 급한 전갈을 받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소집한 회의에 불려갔다. 여객기를 169대 보유한 러시아 대표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거대 철도회사 러시안 레일웨이스 등 간판 국영기업 7곳 경영자들이 푸틴 앞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이 7개 기업을 민영화하겠다는 방침을 논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푸틴이 러시아식 계획경제의 첨병 역할을 해온 알짜배기 국영기업들을 내놓기로 마음먹은 건 저(低)유가 탓에 발생한 막대한 재정 적자 때문이다. 이 기업들의 지분을 빨리 민간에 팔아 결손을 메워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서방 언론들은 분석했다. '차르(황제)'로 불리며 강인한 이미지를 구축한 푸틴이지만 저유가 앞에서는 백기(白旗)를 들고 고개를 숙인 셈이다. 매각 대상 기업에는 러시아 2위 은행인 VTB, 다이아몬드 채굴기업 알로사, 석유기업 2곳이 포함돼 있다.
[러시아의 강제 합병으로 논란이 된 크림반도의 현재 정세는?]
요즘 러시아 경제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8%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6.3%로 더 추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2년 연속 뒷걸음친다는 얘기다. 원유와 가스를 내다판 돈이 재정 수입의 40%대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데, 유가(油價) 급락으로 치명상을 입은 게 결정적이다. 게다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강제로 편입했다가 서방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한 탓에 무역 규모도 급감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13년만 하더라도 1인당 GDP가 1만4000달러대였지만, 지난해에는 8000달러대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푸틴은 비상 조치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올 들어 비상경제대책반을 구성하고, 올해 정부 지출을 당초 계획보다 10% 줄이기로 했다.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원유 감산(減産)을 논의하는 외교 채널을 가동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주 알렉산더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5% 감산할 것을 제안해왔다"고 밝혀 국제 유가가 일시 반등했다. 하지만 사우디가 이를 즉각 부인하는 바람에 러시아는 망신만 당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같은 해프닝이 저유가로 인한 러시아의 고통과 다급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궁지에 몰린 푸틴은 위기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지난달 독일 유력지 빌트 인터뷰에서 "크림 반도 병합은 정당한 조치였는데도 서방이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했다"며 "서방이 동유럽으로 확장 정책을 편 것이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생긴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푸틴에게 탈출구가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 등 일부 유럽국가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시점이 됐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무역 재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슬금슬금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제 제재가 풀리더라도 저유가 국면이 당장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회생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FT를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