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특파원

지난 5일 오전 11시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Holocaust·유대인 대학살) 추모 단지 '야드 바솀'. 총면적 18만㎡ 규모에 홀로코스트 희생자 공동묘지, 전시실 등이 들어선 '야드 바솀'에는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로 붐볐다. 이스라엘 보안군(IDF) 사병과 간부후보생 200여 명이 전시실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3년 만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IDF의 아담(가명) 병장은 "군 복무 중 거의 두 달에 한 번꼴로 야드 바솀을 견학했다"며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새로운 문서 및 영상 자료가 계속 발굴·공개됐기 때문에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고 했다. 야드 바솀 대외협력부 관계자는 "이스라엘 군인은 사병의 경우 1년에 1회 이상 추모관을 찾는 게 훈련 과정의 하나로 잡혀 있다"며 "한 해 90여만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관람객으로 붐비는 전시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사료관과 홀로코스트 연구 국제학교 건물에는 자료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사료관 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학살한 유대인 명부를 비롯,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의 일기장 등 1억2500만건의 문서와 10만건의 영상 자료가 보관돼 있었다. 사료(史料) 조사관들은 손바닥보다 작고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종이 등 다양한 자료를 조심스레 다루며 분석 작업에 한창이었다. 홀로코스트 연구 국제학교에는 세계 각국에서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러 온 연구자로 가득했다. 각국의 국제학교 교사들을 초빙해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육을 해주는 과정도 있다. 이 교사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가르치게 된다. 야드 바솀은 추모관이자 역사 연구소 겸 학교였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대학살 추모 단지인 ‘야드 바솀’의 한 전시실에서 둥근 벽면을 가득 메운 희생자들의 사진을 올려다보고 있다.

[[키워드정보]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야드 바솀의 리탈 비르 자료·정보국장은 "'전 세계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독일 총리는 매년 사죄까지 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왜 그렇게 자료 수집과 분석 그리고 홍보를 계속하느냐'고 많은 이가 의아해한다"며 "역사는 끊임없이 입증하고 알리지 않으면 증발해 사라진다"고 했다.

야드 바솀은 1953년 설립 이후 독일·폴란드 등 유럽 각국의 협조를 통해 학살과 관련한 공문서 등 객관적 증거를 수집해 왔다. 해외 지부를 세우고 '야드 바솀 특파원'을 파견해 사건 관계자의 증언을 녹취하고 그 나라 역사학자들과 협력해 사실 관계를 입증하는 데 노력했다. 또 나치 당원이었지만 수많은 유대인을 살리는 데 앞장선 오스카 쉰들러 같은 '영웅'을 찾아내는 일도 병행했다. '탈출을 도와줬던 인물이 있다'는 생존자의 제보가 들어오면 검증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2005년 유대인 수용소 책임자였던 칼 플라게 소령이 목숨을 걸고 유대인 100여 명을 살려줬던 사실이 60여년 만에 밝혀져 '제2의 쉰들러' 사건으로 화제가 됐다.

비르 국장은 "독일이 이스라엘에 무릎 꿇고 사죄하게 된 것도 탄탄한 역사적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국민의 정체성인 역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