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카리오’에서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린다.

영화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007 스카이폴'의 공통점은 뭘까. 촬영감독이 같다. 로저 디킨스(66)는 세상의 혼돈을 렌즈에 독창적으로 담아왔다.

3일 개봉하는 액션 스릴러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감독 드니 빌뇌브)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건 사람이 아니다. 뿌연 먼지다. 우리는 지금도 산소와 더불어 온갖 티끌을 들이마신다. 먼지는 밝을수록 잘 보인다. 이 영화는 햇볕 내리쬐는 미국 애리조나의 오프닝 장면부터 작전 브리핑, 확신이 없는 순간을 지나 축구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먼지로 열려서 먼지로 닫힌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을 그린 영화다. 법과 원칙이 중요한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정체불명의 작전 컨설턴트(베니치오 델 토로), 성공만 좇는 CIA 책임자(조슈 브롤린)를 따라간다. 작전은 하나이고 목표는 제각각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프리즈너스'(2013)에서 납치 사건과 미로(迷路)에 빠진 세상을 보여준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에도 꽉 찬 밀도로 스크린을 채운다.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는 사막, 날씨, 풍광, 지형을 전부 다 이용한다. 말수는 없지만 힘있는 조연 배우처럼 그것들을 쓴다. 흥미로운 실험 같다. 국경 사이의 긴장을 잡아내는 앵글, 무기를 뽑아 들기 전의 순간도 포착한다. 식탁에서 오렌지를 굴리며 축구에 몰입하는 장면, 그림자를 통해 비행기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년 아카데미에서 촬영상을 받아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움과 힘을 한몸에 지닌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도 좋지만 스크린 전체를 지배하는 배우는 베니치오 델 토로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돋보기가 햇볕을 모으듯 시선을 집중시킨다. 매우 미국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이 영화의 흠이다. 121분,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