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휘몰아치는 밤, 맥베스(마이클 패스벤더)는 칼자루를 쥔 채 망설인다. 덩컨왕은 술에 취해 자고 있다. "장차 왕이 되실 맥베스 만세!"라는 세 마녀의 예언이 용맹하고 충직한 전사 맥베스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라는 두려운 제안. 마음속 풍경은 바깥 날씨보다 사나운데 아내(마리옹 코티야르)가 귓속말로 탐욕을 부추긴다.

"오너라, 살인의 악령들아. 잔인한 마음으로 나를 가득 채워라. 오너라, 짙은 밤아. 다가올 모든 낮과 밤은 우리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이다…."

12월 3일 개봉하는 '맥베스(Macbeth)'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다. 영화는 맥베스가 죽은 아들의 두 눈을 굴 껍데기로 덮고 흙을 뿌린 뒤 화장(火葬)하는 장면으로 열린다. 승전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의 예언을 들은 그는 정의와 야망 사이에서 고뇌한다. 기어코 거사를 감행하고 피 묻은 손과 몸을 빗물과 강물에 씻는다.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역으로 왕좌를 차지한 맥베스(마이클 패스벤더·왼쪽)와 왕비(마리옹 코티야르).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도 그대로다. 특히 정치판일수록 아군인지 적인지 알 수 없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고 맥베스는 묻는다. 차기 대선 주자들과 그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다. 먼지 뒤집어쓴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의 현실과 미래가 담겨 있으니까.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스코틀랜드가 무대인 맥베스는 살인으로 열리고 닫힌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만든 영화 '맥베스'와 견줄 만하다. 연극으로 이 비극을 기억하는 관객일수록 더 추천한다. 안개 낀 거칠고 아름다운 스코틀랜드가 무대다. 전쟁터에서 다들 엉겨 붙어 익사하는 것 같은 오프닝부터 사뭇 장엄하다. 저스틴 커젤 감독은 전투 장면을 때로는 느리고 때론 빠르게 펼치면서 칼과 피, 함성과 비명을 긴박하게 스크린에 담았다.

맥베스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헛것을 보게 된다. 그 옛날 셰익스피어는 아마도 왕을 보호하기 위해, 반역자의 뜻을 꺾기 위해 이 비극을 썼을 것이다.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명대사와 독백이 시(詩)처럼 흘러나온다. 세 마녀의 나머지 예언이 영화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도 볼거리다. 어쩌면 관객은 아플 수도 있다. 말(言)이 휘두르는 강펀치를 오랜만에 기꺼이 두들겨 맞았다. 113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