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머의 힘:시각적 설득의 기술|버지니아 포스트렐 지음|이순희 옮김|열린책들|480쪽|2만5000원

한국에서 '글래머(glamour)'란 가슴이 풍만한 여성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책은, 이 요염한 단어의 의미 확장을 시도한다. 사전적으로 글래머는 부티나 귀티, 화려함을 뜻한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의미했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이 단어가 원래 갖고 있던 매혹의 힘에 주목한다. '베이글녀(女)' 같은 우리식 조어(造語)는 글래머의 의미를 너무 좁게 사용한 셈이다.

저자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패션·스타일 전문 여성 칼럼니스트로 2004년 테드(Ted) 무대에서 '글래머에 관하여'라는 16분짜리 강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 대통령에서 평범한 부엌 인테리어까지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뿜어내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글래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이 강연이 책 집필의 동기가 됐다.

저자는 글래머를 '시각(視覺)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매혹하는 수사학'이라고 규정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비(非)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자, 타인으로 하여금 다른 무언가,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이다. 수퍼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어린이처럼 사람들은 글래머를 가진 존재에 자신이 꿈꾸던 이미지를 투영하게 된다.

왜 시각적 설득일까. 글래머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형태로 남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는 일곱 살 때 봤던 프리드리히 대제와 볼테르가 등장하는 '오찬회' 그림 속의 장면이 평생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18세기 귀족들의 생활상이 그에겐 이상적인 디자인의 원형이었다. 명품 업체들이 동영상인 TV 광고보다 신문·잡지 광고를 선호하는 것도 하나의 글래머한 '장면'으로 독자를 매혹시켜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력한 글래머를 뿜어내는 사진 속으로 들어가 관객들은 모델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 스코틀랜드인들이‘풋내기도 기사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라고 믿었던 글래머는 지금도 우리를 매혹한다.

비행기 조종사가 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 '글래머 보이'라고 불리게 된 것도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등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집단적으로 뿌려진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젊음과 패기, 품위, 용맹, 숙련된 기술, 섹시함, 현대성 등을 겸비한 매력적이고 신비한 존재였다. 동시에 당시는 신문 잡지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비행기 조종사는 여전히 호감을 주지만, 과거처럼 강한 글래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비행기는 일상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글래머의 최대 수혜자였다. 예를 들어 오바마는 젊음과 활력, 잘생긴 용모를 정치 변화에 대한 약속과 결합시켰다. 많은 평론가는 시선이 비스듬히 위를 향한 오바마의 포스터 속 초상화를 글래머한 매력을 이상적으로 드러낸 사진으로 평가했다. 존 F 케네디는 미국 우주선이 달 착륙에 성공한 직후 "이제 우주 개발이 글래머를 잃었다"고 내뱉을 정도로 글래머를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로널드 레이건이나 넬슨 만델라, 정보기술(IT) 업계의 스티브 잡스 등은 글래머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가진 인물로 소개된다.

글래머가 발생하는 것은 '거리감'과 '신비감' 때문이다. 친밀한 존재는 결코 누군가를 매혹할 수 없다. 중년 부부들은 이를 알고 있지 않을까. 익숙함은 오히려 불만을 낳는다. 저자는 모델 케이트 모스가 언론 앞에서 입을 열지 않은 점을 사례로 제시한다. "(케이트 모스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 눈에 띄지만, 누구와도 말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천재다."

패션과 역사, 정치, 신화까지 종횡무진 넘나드는 서술이 정신없지만, 광고·패션업계나 이미지 연출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일독(一讀)할 만하다. 특히 앤젤리나 졸리나 1930년대 할리우드 영화 스틸 컷 등 글래머의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면을 담은 화보와 '흡연' '캘리포니아' '무선 기술' '상하이' 선탠' '공주' 등 14개 항목에 걸쳐 글래머의 전형적 사례를 분석한 내용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