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되, 사극이 아니다. 극단으로 아들을 몰아붙이는 아버지와 극단으로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들. 역사에서 소재를 취했을 뿐, 어느 시대에나 있는 부자(父子) 갈등 이야기다. 실록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에서는 정통 사극의 맥을 잇는다. 영화 속 사도세자의 기행(奇行)은 물론, 뒤주 속에서 목이 말라 부채에 오줌을 받아먹는 장면까지 모두 사료에 기록돼 있다. 실제 사도세자가 일반 뒤주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뚱뚱했고, 칼을 들고 영조를 죽이러 갈 때도 수로의 창살에 몸이 끼여 실패했다는 것 정도가 영화와 역사의 차이다(물론 유아인을 그렇게까지 살찌웠다간 흥행에 막대한 지장이 있었을 테지만).

흥행과 비평을 모두 잡은 영화 '사도(思悼)'는 이렇듯 '웰메이드' 작품이다. 추석을 전후해 흥행 최고조에 오를 이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걸작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길 게 분명하다. 그래서, 정말 그래서 옥에 티, 사족부터 짚는다. 할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된 청년 정조(소지섭)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문근영)의 회갑연을 치르는 장면.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끝내기 아쉬웠겠지만, 감독은 욕심을 버려야 했다. 부채춤을 추는 소지섭이라니! 늙어도 볼은 탱탱한 문근영의 얼굴을 거북 등껍질처럼 분장한 것도 거북한데, 아버지가 남긴 부채를 들고 정체 모를 춤을 추는 장면, 너~무 길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최대 피해자는 소지섭.

한편 '사도'는 한국 영화판에 '유아인 독주시대'를 예고한다. '완득이'로 싹을 틔우더니 '베테랑'에서 악역이 무엇인지 원 없이 보여준 이 나쁜 남자는 '사도'를 통해 선과 악의 경계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인물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연기했다. 자기 오줌을 마시다 오열하는 장면, 후궁인 생모의 회갑연을 아버지 몰래 치르며 "어머니가 이 나라의 진정한 중전입니다아~" 절규하는 장면에선 관객도 함께 운다. 40대부터 80대까지의 영조를 발성 하나로 넘나든 송강호의 신들린 연기에 결코 기죽지 않은 유아인은 여성 관객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분간 영화판을 지배할 것 같다.

극단으로 아들을 몰아붙이는 아버지 영조와 극단으로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들 사도세자를 연기한 송강호(왼쪽)와 유아인.

이준익 감독의 무르익다 못해 곰삭은 연출력도 배우들 연기력에 버금갔다. 그는 사도세자가 광기에 이르는 과정을 억지 설정이나 반전 없이 세밀화 그리듯 꼼꼼하게 스크린에 재현했다. 광해군이나 장희빈 같은 인물의 창의적(이라고 쓰고 날조라고 읽는다) 재해석을 즐기는 TV 사극과는 격을 달리했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사도세자를 당쟁에 희생된 아까운 인물로 그렸을 터. 하지만 정공법을 택한 이준익은 역사를 지극히 사적(私的)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파고들면서 관객과 평단의 허를 찔렀다. 이 영화를 "아버지(또는 어머니)와 함께 다시 보고 싶다"는 젊은 관객이 많은 것도 그 이유다. "아버지는 밤낮 이 고생인데, 자식이란 놈은…" 하고 혀를 차면서 "공부와 예법이 이 나라 국시"라고 엄포하는 아버지에게 "예법이 있기 전에 마음. 그 마음을 보아야 한다"며 허공으로 화살을 날리는 아들은 오늘 대한민국의 가정, 나아가 임금피크제로 불붙은 세대 갈등의 풍경을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가슴 적시는 명장면도 많다. 콤플렉스로 뭉친 아버지의 마음을 얻으려 그저 용서를 빌고 또 빌어야 했던 사도세자가 눈보라 속 궁궐 마당에서, 폭우 속 금천교에서 석고대죄하는 장면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 슬픈 이야기에도 간혹 웃음이 터지는 건, 심각한 연기는 질색인 송강호 덕분이다. "아들을 어찌 역모자로 몰려고 하시느냐"며 대드는 유아인에게 "니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며 입을 삐죽이니 객석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역사 전공 기자(유석재)의 포인트!

"임금이 세자에게 명하여 땅에 엎드려 관(冠)을 벗게 하고, 맨발로 머리를 땅에 조아리게 하고 이어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전교를 내려 자결할 것을 재촉하니, 세자가 조아린 이마에서 피가 나왔다." 영조실록 1762년 윤5월 13일의 기사,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날의 기록은 이렇듯 처절하다. 그 처절함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기만 해도 절로 긴장감이 넘친다. 사극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