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에선 드론(drone·무인기)용 반도체 메이커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세계 최대의 모바일 반도체 기업 퀄컴이 드론 시장에 진출한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통신,내비게이션, 영상 처리 등 드론의 핵심기능을 하나의 칩으로 해결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퀄컴이 뛰어들면 기존 드론 메이커들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대두된 것이다.
스마트폰용 통신칩(모뎀)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퀄컴이 드론에 눈독을 들이는 건 사업 다각화 차원이다. 올 2분기 퀄컴의 반도체 매출은 22%나 감소했다. 특허료 수입은 겨우 마이너스 성장을 면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되고 메이커간 가격 경쟁이 격화된 여파였다.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퀄컴은 큰 성장 잠재력을 지닌 드론 사업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세계 1위 수치제어(CNC) 공작기계 업체인 일본 화낙은 최근 자국의 인공지능 벤처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 애플에 CNC머신을 납품해온 화낙은 지난해 삼성전자에도 2만대를 공급해 매출이 폭증했다. 화낙의 주가는 그러나 최근 중국 증시 폭락과 맞물려 15% 안팎 급락하는 등 약세를 면치 못했다. 중국 매출 비중이 30%가 넘는 애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증권사들이 화낙의 실적 전망을 잇따라 하향 조정한 것이다. 화낙의 새 사업 진출 소식은 그 와중에 터져나왔다.
글로벌 스마트폰 부품·소재 업계에 사업 다각화 바람이 불고 있다. 애플·삼성전자가 주도해온 고가 스마트폰 시장은 정점을 지났고, 스마트폰 가격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급격히 몸집을 불려온 부폼·소재 업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자동차·무인항공기·인공지능 등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급속도로 포화되는 스마트폰 시장
2007년 애플이 첫 아이폰을 내놓은 뒤 고속 성장해온 스마트폰 산업은 올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우선 시장이 급속도로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 분석 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2011년 59%, 2013년 42% 성장했던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률은 지난해 24%로 낮아진 뒤 올해는 그 절반도 안되는 10% 안팎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부품업체 입장에서 더 안 좋은 소식은 스마트폰이 범용제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 하나뿐이었던 스마트폰 메이커는 무려 1300개로 늘었다. 제조사가 300개 수준인 TV 산업과 비교하면,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그 결과 300달러 이상급 프리미엄 스마트폰 가격은 올해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가격은 애플과 삼성전자가 스펙 경쟁을 주도하면서 2012년 평균 500달러대를 돌파한 이후 2013년 532달러, 지난해 555달러로 정점을 쳤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SA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가격은 올해 543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하락 반전한 이후 2020년에는 516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동부증권 권성률 애널리스트는 "고성능, 고가의 부품을 공급해왔던 글로벌 부품업체들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제품 가격은 하락 반전
질높은 부품·소재를 공급하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과실을 독점해왔던 글로벌 부품업체들은 생존 차원에서 신사업 개척에 나서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모바일용 CPU) 설계 분야 세계 1위인 영국 ARM은 창업 24년 만에 처음으로 본업 아닌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 피트니스 밴드 같은 웨어러블 기기와 서버용 반도체 분야에 진출한 것이다. 반도체 한 우물만 파온 이 회사는 저전력·고성능 AP 기술로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95%를 석권했고, 시가총액도 5년 만에 6배로 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아이폰 등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 분야에서 점유율 40%로 세계 1위인 일본의 닛토덴코는 최근 "애플과 구글에 스마트 자동차용 부품 공급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이폰6가 대히트 하면서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32%나 늘었지만 스마트폰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자 자동차용 부품과 헬스케어 분야에 투자를 대거 늘렸다.
국내부품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SDI는 전기 자전거와 전동 공구 등 비(非)IT 제품용 배터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애플과 LG전자에 스마트폰용 카메라 부품을 공급해온 LG이노텍은 자동차용 카메라 사업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