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고대 유적 팔미라의 보물 위치를 대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압박과 고문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시리아 고고학자 칼리드 알아사아드(83) 박사가 18일 결국 살해됐다고 시리아 관영 SANA통신이 보도했다. 고대 로마와 페르시아 제국의 양식이 혼합된 거대 도시 유적지인 팔미라는 1980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사막의 진주' '중동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에 살해당한 시리아의 고고학자 칼리드 알아사아드 박사가 2002년 9월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제사장 모습이 새겨진 석관(石棺)을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고 있다. 평생을 팔미라 유적 발굴과 보존에 헌신한 알아사아드 박사는 IS로부터 팔미라 유적을 지키려다 끝내 살해당했다.

평생을 팔미라 유적 발굴과 보존을 위해 헌신한 알아사아드 박사는 지난 6월 IS에 납치됐다. 그는 서른셋이던 1963년 팔미라 유적 담당자로 임명돼 2003년 팔미라 박물관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현직에서만 40년 동안 팔미라에 인생을 걸었다. 수도 다마스쿠스로 역사학 공부를 하러 갔을 때를 빼고는 팔미라 곁을 떠나 살아본 적도 없었다. 별명도 '미스터 팔미라'였다. 은퇴 후에도 고향인 팔미라에 살며 연구를 계속하던 그는 지난 5월 IS가 곧 들이닥친다는 주민들 경고에도 "잘못한 게 없으니 괜찮을 것이다" "내가 팔미라를 지켜야 한다"면서 피란을 거부했다.

같이 가자고 매달리는 자녀들한테도 "늙은 나를 저들이 어쩌겠느냐"고 안심시키며 혼자 남았다. 실제로 IS는 점령 직후 그를 잡아갔으나 조사한 뒤 금세 풀어줬다.

하지만 한 달 뒤 IS는 테러자금 마련을 위해 암시장에 내다 팔 유적물이 필요하자 알아사아드 박사를 다시 잡아갔다. 박사의 조카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삼촌은 만약에 대비해 사람들을 시켜 팔미라 박물관의 주요 보물을 어딘가에 몰래 숨겨두도록 했는데, IS가 이를 알아채고 그 위치를 캐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사는 수주간의 갖은 고문과 참수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를 아는 이웃 주민들은 "알아사아드 박사는 자신의 딸 이름도 팔미라의 고대 여왕 이름을 따 제노비아(Zenobia)라 지었다"면서 "그는 딸 같은 팔미라를 자기 목숨보다 더 아꼈다"고 전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IS는 18일 팔미라 박물관 인근 광장에 알아사아드 박사를 끌고 나와 군중 앞에서 참수했다.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안경을 끼고 정정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SOHR은 전했다. IS는 이후 박사의 시신 앞에 하얀 판을 세우고 그 안에 붉은 색으로 '이란과 시리아 정부의 협력자' '팔미라 우상물의 관리자' '배교자' 등의 글귀를 적었다. 유물 암거래로 돈 벌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실패하자 이 같은 '명분'을 만들어 박사를 정당하게 죽인 것처럼 꾸미려 한 것이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19일 성명을 통해 "고인의 업적은 극단주의자들을 넘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면서 "IS는 위대한 인물을 살해했지만 역사를 침묵하게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