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술이, 아침에는 커피가 문명 세계를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모닝 커피 덕에 힘겹게 이륙하고 술과 함께 쿵 소리를 내며 착륙한다. 일은 애증의 대상이다. '품위 있는 노동'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8월 5일 개봉하는 '베테랑'(감독 류승완)은 그래서 통쾌한 영화다. 스크린 속엔 더없이 형사다운 형사가 살고 있다. 입을 험하게 놀리지만 불의 앞에 타협 없고 권력도 재벌도 무서워하지 않는 서도철(황정민). 그는 정반대로 우리 사회의 결핍, 품위 있는 노동을 몸으로 증명한다. 전세 대출 만기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서도철은 아들에게 말한다. "사나이는 대출 신경 쓰는 거 아니다. 크게 가 크게. 인생 뭐 있노?"

형사 액션물 '베테랑'은 돈과 일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이야기는 간명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팀 서도철 형사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끈질긴 승부. 하도급업체에서 트럭을 몰다 해고당한 배 기사(정웅인)가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대기업 본사를 찾아가 1인 시위를 벌이다 추락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서도철은 조태오를 만나러 고층 빌딩으로 들어가면서 크게 심호흡을 한다.

못 잡는 놈 없는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오 팀장(오달수), 두려울 것 없는 조태오(유아인)와 최 상무(유해진).

이 영화는 단순한 서사라는 약점을 액션으로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리듬이 반갑다. 치고받고 싸우는데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 청량감이 '베테랑'의 미덕 중 하나다. '베를린'으로 700만여명을 모은 류승완 감독은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합이 잘 맞고 유머러스하면서 멋있는 액션을 선물한다.

가장 값진 한 장면은 화장실에서 벌어진다. 배 기사 아들이 구구단을 외는 대목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울고 있고 아들은 밖에서 구일은 구, 구이 십팔, 구삼 이십칠을 중얼거린다. 아버지가 돈 때문에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들은 숫자에 구원을 청한다. 구구단은 늘 질서를 지키고 피를 흘리지도 않으니까. 꼬마가 일찍 배운 상실의 기술에 속이 쓰라리다.

이 영화는 해봐야 안 될 싸움을 기어이 접전으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갑(甲)과 을(乙)이 다투는 한국 사회를 비춘다. 관객은 물론 을의 편이다. '부당거래'를 지나온 류승완 감독은 서도철을 향해 "집에서는 사고뭉치라고 구박받지만 늘 내 편이고 응원하고 싶은 삼촌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 삼촌들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조폭부터 형사까지 다재다능한 황정민은 으레 그렇듯 준수한 연기를 했다. 이번엔 액션이 춤을 춘다. 배경음악으로 '나 어떡해'가 흐른다. 주먹질, 발차기, 피투성이와의 부조화가 매력적이다. 웃음의 펀치랄까. 봉고차를 몰던 오 팀장(오달수)은 용의자에게 "힘들지? 타고 가. 물 줄까?"라며 거든다.

이 영화를 보면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폭에 더 놀란다. 뼛속까지 나쁜 놈이다. 베테랑 서 형사는 그에게 속지 않고 응수한다. 죄는 짓고 살지 말자고.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묻는 장면에서 조태오는 가장 두껍고 악랄한 방패처럼 보인다. 서도철은 명동 한복판에서 그를 추격하고 얻어터지면서도 그의 팔목에 수갑을 채운다.

주연보다 몇 배 더 바쁜 배우 오달수와 유해진(최 상무)을 한 영화에서 본다는 것도 드물게 유쾌하다. 가장 귀에 꽂히는 대사는 "그냥 일 좀 하게 해달라고요"였다. 브라보, 브라보. 123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