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이 아침 일찍 교정을 달군 지난 15일. 초등학생 넷이 학교에 도착했다. 이란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6학년 동갑내기 남학생 이유네스와 아미르, 막내 1학년 박이삭, 그리고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홍일점 3학년 정유안.

전교생 네 명이 모이자 "건강히 지내고 반갑게 개학식 날 만나자"는 임광순(53) 교장의 훈화가 이어졌다. 전형적인 한국 초등학교 종업식이 펼쳐진 이곳은 서울에서 6500㎞ 떨어진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 남쪽 부카레스트가(街)에 자리 잡은 테헤란 한국학교다. 이날 교사들과 학생들 표정은 들떠 있었다.

방학이 시작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간밤에 들려온 서방국가들과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 소식 때문이다. 이란 사람들에겐 형편이 크게 나아질 거란 기대감에 들뜨게 하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학교도 애타게 기다렸던 뉴스다.

지난 3월 테헤란 한국학교의 신입생 입학식에 교사와 선배들이 ‘총출동’했다. 앞줄은 왕관을 쓰고 꽃다발을 든 유일한 신입생 박이삭군과 담임 전선화 교사. 뒷줄은 왼쪽부터 임광순 교장·아미르군·정유안양·이유네스군·김경일 교사.

"경제제재가 풀리면 빠져나갔던 한국 기업이 다시 돌아올 겁니다. 아이들이 없어 40년 역사를 이어온 학교가 문 닫을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가 되겠죠.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최고의 방학 선물이에요." 수화기 너머 임광순 교장의 목소리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테헤란 한국학교는 1976년 4월 문을 열었다.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어엿한 공립 초등학교다. 개교 초기엔 중동 건설 특수로 이란 내 한인 사회가 크게 번성하고, 서울과 테헤란에 각각 테헤란로·서울로가 만들어질 정도로 두 나라 관계는 살가웠다. 학생 숫자가 200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하자 개교 4년 뒤 4층 교사(校舍)를 마련했고, 중등 과정도 신설했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 뒤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서 학교도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외국 기업의 투자가 끊기자 한국 기업들도 버텨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썰물처럼 한국으로 돌아간 자리에 빈 책걸상이 늘어났다. 2002년부터 이란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시작되자 교세는 더욱 위축됐다. 중소기업 주재원들이 대거 짐을 쌌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화되면서 학부모 중 상당수이던 기독교 선교사들도 떠났다. 한때 1000명에 육박하던 한인 사회는 3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분교 수준으로 작아진 학교에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는 위기가 표면화됐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감을 하다 2013년 부임한 임광순 교장은 "매일 학교를 운영해나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했다. 2015년 재학생은 역대 최소인 4명이 됐다. 그나마 위로라면 1학년 막냇동생 박이삭군이 입학한 것이다. 박군의 어머니인 박경선씨는 학교 소식지 '수레바퀴' 기고에서 "학교 설명회에서 열정적인 선생님들 모습도 좋았지만, 아이가 어느 나라 사람으로 살든, 엄마 나라의 말과 문화·정서를 알려주고 싶었다"며 "이란인 남편과 시댁도 흔쾌히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교육 환경은 역대 최고가 됐다. 학생은 넷, 선생님은 교장과 담임 두 명에 태권도·영어·미술 등을 가르치는 이란인 과목별 교사 다섯까지 총 8명. 아이 한 명에 교사 둘이 붙은 셈이다. 한국에서 파견을 자원한 김경일·전선화 두 담임교사는 "행정 업무에 치이지 않고 아이들만 가르칠 수 있는 꿈 같은 학교"라 했다. 이런 학교가 한국에 있었다면 바로 통폐합 대상으로 분류됐을 공산이 크다. 임광순 교장은 "다행히 한 나라의 해외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문화 거점의 상실이라는 점을 당국도 인식했다"며 "한국·이란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입학이 꾸준히 이어져 두 나라의 가교역이 될 인재를 기르는 요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생 넷은 고국의 여느 초등학생들과 다름없는 1학기를 보냈다. 장서 1만2000권이 구비된 학교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골라 독서 발표회를 했고, 페르시아 유적지 이스파한으로 1박 2일 현장학습도 다녀왔다. 인근 체육관을 빌려 선생님들과 녹초가 될 때까지 뛰놀았던 5월 5일 어린이날 체육대회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바깥 경사도 있었다. 병무청이 전국의 초등학교 3~6학년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그림 공모전에서 이유네스군과 정유안양이 나란히 특별상을 받은 것이다.

팍팍했던 이란 사회가 핵협상 타결로 들뜨면서 학교도 복작복작한 예전으로 돌아가길 꿈꾼다. "친구들이 더 많아지면 뭐가 하고 싶어?" 교장 선생님이 묻자 아이들이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얼음땡요. 넷이서 하면 싱겁게 끝나거든요.(정유안)"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친구와 선의의 경쟁을 해보고 싶어요.(이유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