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사냥꾼에게는 철칙이 있다. '무리 중 가장 크고 늙은 코끼리부터 쓰러뜨릴 것.' 그래야 나머지 코끼리들을 쉽게 붙잡을 수 있다. 코끼리 떼 우두머리는 길잡이이자 파수꾼이다. 무리의 생존에 절대적인 '기억'과 같다.

6월 11일 개봉하는 '엘리펀트 송(Elephant Song·감독 찰스 비나메)'은 코끼리에 얽힌 기억으로 요동치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정신과 병원에서 어느 날 의사 로렌스가 사라진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 마이클(자비에 돌란)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 로렌스의 행방을 추적하는 동료 의사 그린 박사(브루스 그린우드)에게 마이클은 양보할 수 없는 세 가지 조건을 내민다. 내 진료 기록은 보지 말 것, 간호사 피터슨(캐서린 키너)을 배제할 것, 내게 초콜릿 박스를 선물할 것.

‘엘리펀트 송’은 배우들이 지껄이는 모든 말에 진실이 담긴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연극 '에쿠우스'를 떠올렸다. 여섯 마리 말들의 눈을 찌르고 나서 법정에 선 소년 앨런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상처와 맞닥뜨리게 되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다. 마이클이 불행한 가족사를 꺼내 놓을수록 그린 박사는 아내(캐리 앤 모스)를 비롯해 자신의 죄책감과 마주하게 된다. 동전의 양면이다. 각자의 투쟁, 트라우마가 있다. 이 영화는 가족 관계의 폐허 위를 검시(檢屍)하듯 맴돌면서 급소를 짚는다. 아프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거리를 두면서도 가까울 수 있다. 지난해 '마미'로 칸영화제 역대 최연소 심사위원상을 받은 '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 감독은 '엘리펀트 송'에서 배우로 마이클을 연기했다. 충만한 광기와 포만감은 비타500이 아니라 이런 것이다. 자비에 돌란은 원작 연극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제작자에게 전화를 걸어 "누가 감독을 하든 마이클 역할은 내게 맡겨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가 준비한 가장 완벽한 하루가 펼쳐진다. "엄마는 내게 희망을 줬어요. 지속할 게 아니라면 애한테 희망을 줘선 안 돼요"라는 비명이 귓전에 울린다. 다스릴 줄만 알면 향기로운 추억이 될 텐데 그러지 못한 사람은 인질처럼 붙잡힌 채 길게는 평생을 휘둘린다. 주연배우들의 호흡과 앙상블도 뻐근하다. 자식이 진실을 말했지만 부모가 제대로 듣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미궁 같은 이야기가 생기발랄하게 다가온다. 매우 드문 일이고 부모라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99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