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제게 이 상은 작은 꼬마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담벼락 밑에 웅크리고 앉아 바라만 보고 있었던 큰 성(城)이었습니다. …이제 상을 받고 보니, 늘 엄살 부리고 도망갈 생각만 했던 저 자신이 마냥 부끄럽습니다."

20일 오후, 제25회 이해랑연극상 시상식이 열린 조선일보사 미술관은 300여명의 하객으로 가득 찼다. 수상자인 배우 길해연(51)씨는 아래쪽에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흰색 투피스 차림으로 식장에 나타나 시선을 집중시켰다.

길씨가 수상 소감에서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연극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열광적 박수가 터졌다. 가수 김현정씨를 비롯한 후배 10여명이 달려나와 경쟁하듯 길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심재찬 극단 전망 대표는 축사에서 "길해연씨는 후배들도 놀랄 만큼 도전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변화에 앞장서 온 배우"라고 말했다.

제25회 이해랑연극상 시상식이 열린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수상자 길해연·이병복씨가 역대 수상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앞줄 왼쪽부터 고 서희승씨 부인 손해선, 박정자, 길해연, 이병복, 임영웅, 손진책씨. 뒷줄 왼쪽부터 박명성, 정동환, 김삼일, 전성환, 이호재, 한태숙, 손숙, 유인촌, 김성녀, 손봉숙, 박동우씨.

이해랑연극재단(이사장 이방주)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한국 연극사의 거목 이해랑(李海浪·1916~1989) 선생의 리얼리즘 연극 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 연극상이다.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은 길씨에게 트로피와 상금 5000만원을 수여했다.

이날 시상식에선 원로 무대미술가인 이병복(89)씨가 특별상을 받았다. 임영웅 심사위원장은 "한국 무대미술이 '이병복 이전'과 '이병복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연극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그를 소개했다. 이씨는 "한눈 팔 새 없이 북 치고 나팔 불었는데, 해 놓은 일은 없고 해야 할 일만 남았다"며 "'시간'이란 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울먹여 장내를 뭉클하게 했다. 수상 소감이 끝나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시상식에는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유민영 서울예대 석좌교수, 배우 손숙씨, 허순자 서울예대 교수,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등 심사위원,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이민주·석주씨 등 이해랑 선생 가족, 역대 수상자인 실험극장 이한승 대표, 배우 이호재·박정자·유인촌·전성환·손봉숙·정동환·김성녀씨, 연출가 손진책·김삼일·한태숙씨, 무대미술가 박동우씨, 고 김동원(4회 특별상)씨의 아들인 김진환·세환(가수)씨, 고 서희승(9회 수상)씨의 부인 손해선씨 등이 참석했다.

또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김용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사장, 영화감독 김수용·김기덕씨, 이종찬 전 국정원장, 연극배우 오현경·김재건·서이숙·이대연·정승길·김수현·이승주씨, 연출가 심재찬·윤광진·최용훈·최준호씨, 극작가 김수미씨, 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 정진홍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김문순 이해랑연극상 운영위원장(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