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6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번화가 니수르 광장에서 차량 안의 어머니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 즉사했다. 순식간에 변을 당한 이 어머니는 자신이 다친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울부짖으며 아기를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도움을 청했지만, 주위의 다른 차들도 이미 총탄으로 마맛자국이 나 있었고 안쪽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류탄 폭발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진 차도 있었다. 이렇게 비무장 이라크 민간인 14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 외교관의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4명의 미 사설 군사업체 '블랙워터(Black water)' 직원들이었다. 블랙워터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전후 처리를 하는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고 이라크에서 '계약직 민간 군인'으로서 활동 중이었다. 미 정부는 정규군과 달리 의료비·퇴직금 등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군사업체 직원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용병으로 활용했다.
미 검찰은 2008년 블랙워터 직원 니콜라스 슬래튼, 더스틴 허드, 에반 리버티, 폴 슬로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재판도 하지 않고 기각했다. 검찰이 면제권을 조건으로 얻은 증언이 적법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블랙워터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에 사건이 기각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블랙워터는 국방부는 물론 미 중앙정보부와도 연간 수억달러 계약을 체결해 협업했고, 미 공화당의 대표적인 정치자금 후원단체였다.
검찰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 실수한 미 청년들을 무리하게 수사한다'는 비난에 휩싸였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수사에 착수했다. 사고 현장에 있던 또 다른 블랙워터 직원 등으로부터 "니수르 광장에는 반군은 물론 AK소총조차 없었다" "차가 많아 길이 막히자 이를 정리하려고 슬래튼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는 등의 구체적 증언을 확보했고, 2012년 슬래튼 등을 다시 기소했다. 이번에는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죄였다. 하지만 피의자들은 "반군의 총기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대응했던 것"이라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치열한 법정 공방전이 계속됐다.
이후 3년이 지난 13일 워싱턴 연방법원의 법정에 파란 죄수복을 입고 발목엔 쇠고랑을 찬 슬래튼 등 4명의 피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건 발생 8년 만에 이들에 대한 형량이 선고되는 자리였다. 로이스 램버스 판사는 "피의자들은 어려움 한 번 겪어보지 않은, 그리고 나라를 위해 일했던 착한 청년들이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2007년 바그다드에서 저지른 행동을 용서할 수는 없다"면서 슬래튼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셋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이라크를 수차례 오가면서 끈질지게 조사해 '피의자의 총격이 테러 위협에 따른 것이 아님'을 입증해낸 것이다.
램버스 판사는 "법무부(검찰)와 연방수사국이 여러 압박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 그 결과를 세계 앞에 내놓았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판결은 미국 국민과 함께 이라크 국민에게도 미국의 형사 사법 체계가 바로 서 있음을 보여준 '외교적 성과'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