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경상남도의 무상 급식을 학생 전체가 대상인 ‘보편 방식’에서 저소득층만이 대상인 ‘선별 방식’으로 바꾸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도지사 사무실로 항의 방문했다. 30분간 접점 없는 설전(舌戰)을 주고받은 끝에 헤어졌다. 두 사람은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었다”고 상대방을 비판했다.
그 이틀 후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홍 지사의 보편적 무상 급식 중단 결정에 대해 "잘했다"는 응답이 49%였다. "잘못했다"는 37%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홍 지사가 야당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와의 기싸움에서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홍 지사를 무동이라도 태워줘야 할 것 같은데 분위기는 딴판이다.
홍 지사는 무상 급식 예산 1125억원 중 저소득층을 위한 482억원은 그대로 집행하되 나머지 643억원은 서민 자녀를 위한 교육 지원 예산으로 돌렸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 10만여명이 교육비 50만원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반면 경남의 무상급식 대상은 전체 학생 28만명에서 6만6000명으로 줄어든다. 홍 지사의 '예산 전용'으로 혜택이 늘어나는 사람은 10만명이고 혜택이 줄어드는 사람은 그 두 배인 20만명 남짓이다.
'묻지마 복지'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홍 지사의 결정에 대해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은 머리를 끄덕인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온다. 반면 홍 지사가 자기 주머니에서 자녀 급식비를 뺏어간다고 느끼는 경남 주민들은 눈에 쌍심지를 켠다. 선거에서 표로 연결되는 것은 후자(後者) 쪽이다. 새누리당은 경남 무상 급식 중단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PK 표심(票心)에 부정적으로 작용할까봐 전전긍긍이다.
정부 여당 사람들이 무상 급식 중단 논란에 찜찜해 하는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무상 급식을 없애면 곧바로 무상 보육도 손보자는 얘기가 나올 것 아니냐"고 했다. 야당 쪽 브랜드인 무상 급식을 들쑤셨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무상 보육 쪽으로 불똥이 튈까 걱정스럽다는 얘기다.
나라 전체적으로 무상 급식에 드는 비용은 2조 7000억원이고, 무상 보육은 10조 2000억원이다. 무상 보육 쪽이 네 배가량 돈이 더 든다. 경상남도만 떼어놓고 봐도 무상 급식 예산은 1125억원, 무상 보육 예산은 7264억원이다.
무상 보육 재정 중 지방이 부담해야 할 몫은 내국세 중 20%가 할당되는 지방 교육재정 교부금에서 나온다. 세수(稅收)가 늘어나면 교부금도 늘어난다. 당초 무상 보육은 교부금이 매년 3조원씩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바탕을 두고 도입됐다. 그러나 교부금은 작년 40조9000억원에서 올해 39조5000억원으로 되레 1조4000억원이 줄어들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세수 실적이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기 때문이다. 믿었던 돈줄이 막히자 무상 보육 사업은 파산 상태를 맞고 있다. 작년 10월에 이어 이달 초에도 시도교육청이 "중앙정부가 추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보육비 예산 편성을 않겠다"고 디폴트 선언을 한 끝에 몇 달치 재원을 마련하는 땜질 처방이 이뤄졌다. 앞으로도 이런 장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돈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무상 급식은 무상이든 유상이든 학생 전원에게 공급해야 하는 필수재다. 복지정책에 따라 공급량이 변하지 않는다. 반면 무상 보육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보육료 지원사업'과 아이를 가정에서 돌보면서 '양육수당'을 지원받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연령에 따라 보육료 지원은 40만~77만원, 양육수당은 10만~20만원이다. 어린이집에 맡기는 편이 국가 지원액이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보살필 수 있는 아이까지 어린이 집에 보내는 '모럴 해저드' 현상이 발생한다. 무상 보육 정책이 보육 서비스 공급량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키는 자원 배분 왜곡 현상을 낳는 것이다.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을 같은 저울 위에 올려 놓으면 정부 여당 사람들은 펄쩍 뛴다. “무상 보육은 대통령 공약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 법으로 뒷받침되는 반면 무상 급식은 지방자치체의 조례 사항에 불과하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윗분의 뜻’이 최우선 가치인 대통령 주변에서나 통하는 ‘궁정(宮廷) 논리’일 따름이다. 국민 눈에는 무상 급식이나 무상 보육이나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보편적 복지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지금의 무상 복지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고 그래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대통령 공약이라는 성역(聖域)을 허물고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