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이 시작되면 메릴린 먼로의 노래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가 우아하게 흘러나온다. 무대에 선 50대 여인은 금발 가발과 드레스 차림으로 립싱크를 하고 있다. 밤무대 이미테이션 가수 노미진(먼로의 본명 '노마 진 베이커'에서 따온 것)은 집 거실에 먼로의 사진을 가득 붙여 놓고, 24시간 자신을 먼로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예쁜 구두를 보면 환장한 나머지 여고생 딸의 석 달치 급식비를 털어 집어 올 정도로 못 말리는 엄마지만 "난 가짜 중에서도 진짜 가짜"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연극 '먼로, 엄마'는 모창 가수라는 독특한 소재가 부모와 자식 세대의 갈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와 재치있고 깔끔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업소에서 해고당한 미진은 다른 모창 가수를 하라는 후배 '주연미'의 권고도 들은 체 만 체하고, 동료 '넘진'의 설 특집 방송 출연을 가로채 재기하려 한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딸 연희는 속마음을 담은 편지를 교생인 필재에게 건네고 가출을 시도한다. "난 그냥 내 얘기 들어줄 어른이 필요한 거야!"
지난해 CJ문화재단의 신인 공연 창작자 지원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의 '엄마'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라는 전통적인 엄마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삶과 취향에 분명한 영역 표시를 해 둔 채, 딸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한다.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방황하던 딸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엄마에게도 그만의 고유한 인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아프다고 발 빼지도 말고, 버리지 말고, 어디 내팽개치지도 말고, 꼭 신고 다녀. 그 구두도 나도… 다 책임지라고!"
"사람들이 먼로를 오해한 것처럼 나도 엄마를 오해한 게 아니었을까?"란 의문에서 출발했다는 25세 대학생 작가 임진선의 극본은 산뜻했고, 지난해 김상열연극상을 받은 문삼화의 연출은 마이너리티의 목소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연 '길해연의 연극'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렇듯 철없으면서도 화사하고 유쾌하며 낙천적인 엄마를 연기한단 말인가.
▷8일까지 대학로 쁘띠첼씨어터, 공연 시간 80분, (02)470-6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