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체호프는 기본입니다. 고대 로마와 프랑스혁명사가 고찰되는가 하면, 프로이트와 안중근, 엘비스 프레슬리가 탐구됩니다. 연극과 뮤지컬을 공연하는 무대 위는 알고 보면 문(文)·사(史)·철(哲)의 보고(寶庫)와도 같습니다. 그 커튼 뒤의 '비밀'을 하나씩 짚어봅니다. /편집자

얼핏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린 장엄한 성화(聖畵) 같지만, 자세히 보면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 눈을 크게 뜨게 되는 그림이 있다.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풍만한 육체를 지닌 채 희열에 찬 미소를 짓는 젊은 여인이다. 정작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는 십자가 왼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이 모습을 본 늙은 대머리 수도사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연극 ‘멜로드라마’에서 미술관 큐레이터인 강서경 역의 배해선이 펠리시앙 롭스의 그림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그림은 벨기에 화가 펠리시앙 롭스(1833~1898)가 그린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다. 보통 성 안토니우스란 인물이 서양 미술 작품에 등장하면 웬 노인네가 괴물들로부터 수염을 쥐어뜯기거나 공부를 방해당하는 등 온갖 해코지를 당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대충 들어맞는다. 서기 3~4세기 이집트 출신의 이 기독교 성인은 사막으로 나가 금욕적인 수도를 하면서 유혹을 이겨낸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림에선 오히려 그 과정의 고통이 절절이 드러난다. 롭스의 그림에서 악마는 음탕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안토니우스의 억압된 성적(性的) 욕망을 밖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연극 '멜로드라마'(작·연출 장유정)의 첫 장면에 등장한다. 미술관 큐레이터인 여주인공은 그림을 설명하다가 프로이트를 인용하며 "욕망이란 터지기 직전의 고무풍선처럼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동으로 튀어나온다"고 설명한다. 이 대사는 극 전체의 진행 방향을 암시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드러낸다. 사회적 규범 속에 살던 서경과 그의 남편은 우연히 찾아온 '본능'에 눈을 떠서 '일탈'하고 각각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데, 알고 보니 그들의 연인인 두 사람은 남매였다.

관객은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옷 잘 차려입고 근사한 공연장에서 연극을 감상하는 일이 어떤 연극에서는 TV에서 매일 틀어주는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욕망 때문에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은 장르를 가려서 나타나는 게 아니므로.

강서경 역에 더블 캐스팅된 홍은희(오른쪽)와 젊은 연인 박재현 역의 박성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영웅이나 스즈키 다다시 같은 연출의 대가들에게 '왜 연극을 보는가' 물어보면 한결같이 "살아 있는 배우가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극의 핍진감에서 나오는 아날로그적 감흥은 정서적 반응의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 면밀히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사(史) 금욕적 성인의 족적이 미술사의 19세기 표현주의 사조와 만나면서 인간 심리의 민 낯을 드러내고, 마침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에 닿게 된다. 인생을 모방한 통속극 속에서도 인류 지식 체계의 씨줄과 날줄이 일부분 드러나는 셈이다. 결국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박인환 '목마와 숙녀')하며, 사람의 본성이란 소용돌이치는 물살 같아서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性猶湍水·'맹자' 고자 상) 것이다.


▷연극 '멜로드라마' 2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17세 이상 관람가,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