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노인 한 쌍이 주춤주춤 집 밖으로 나온다. 강원도 횡성 시골이다. 한밤중 사위가 온통 까맣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자꾸 "무섭다"고 한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다. 아, 여든아홉 할머니가 소피를 보러 나왔다. 행랑채 끝에 매달린 화장실로 들어간다. 밖에 뻘쭘히 섰던 아흔여덟 남편에게 노래를 해달라 조른다.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더니 노래를 웅얼거린다. 관객이 미쳤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지난주 박스 오피스 1위다.
▶대개는 '80년 사랑'이 문턱이다. 혼인 나이와 인간 수명, 그걸 너그럽게 더하고 빼도 부부로 늙는 건 80년에 걸려 넘어진다. 그 문턱을 넘긴 부부 얘기가 나라마다 간혹 들린다. 둘 나이 합쳐 200년을 넘긴 짝들이다. 영국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비결이 뭐예요?" 대답들이 간결했다. "미안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그래 맞아, 여보. 이 말만 했어요." 하루도 안 빼놓고 '뽀뽀'도 하고, 잠들기 전 꼭 안아줬다고도 했다.
▶비슷한 영화가 더러 있었다. 드라마 쪽으로 '아무르', 다큐에 '워낭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요즘 만나면 '님아, 그 강을…'에서 어느 장면에서 눈물을 떨궜는지 서로 견준다. 다큐에서 할아버지 숨소리가 기차 화통처럼 거칠어지자 할머니가 아궁이에 할아버지 옷가지를 태운다. 떠날 때 가벼우시라고. 이 대목에서 20대 관객도 운다. 할아버지는 얼굴 맞대고 누우면 할머니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는다. 다들 모른다. 사랑은 결국 쓰다듬는 것이다.
▶삶에서 80년을 함께 산 부부는 해온 일들도 순박하다. 교사·정비공·집배원, 아니면 농부·주부였다. 같이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밭일이고 뭐고 하루 서너 시간 곁을 지켰다. 살림이 쪼들려도 좋았다. 올여름 영국 BBC방송이 부부 합산 203세인 모리스·헬렌을 소개했다. 부부는 '손주를 보고 싶다' '손주 결혼을 기다린다'고 늘 목표를 정했다고 했다. 카메라가 비키자 남편 모리스가 귀띔했다. "다른 거 없어. 마누라한테 그냥 져주면 돼."
▶어떤 영화든 '산다는 게 뭔지'를 제대로 물어주면 그게 고맙다. 삶이란 수채화처럼 적당히 낡아간다고 영화가 속삭인다. 회사 엘리베이터의 청춘들이 '님아…'를 본 듯 저들끼리 소곤댄다. "진짜 감동이잖냐." "나도 내가 울 줄 몰랐어." 작년 미국에서 최장수 부부로 공인받은 한 남자는 "언제나 아내를 따르라"고 했다. 아쉽게도 보통 남자는 그걸 모르고 죽는다. 영화 속 음악은 할머니의 애통함으로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