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 5대 시중은행 가운데 상업과 한일이 합병을 선언했다. 합치면서 공적 자금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우리은행 전신(前身) 한빛은행이 그렇게 탄생했다. 은행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지만 상업·한일 두 은행 출신들은 주도권을 다투느라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도저히 못 봐주겠어서 양쪽 행장 모두 사표를 받았다. 그리고 내세운 대안이 김진만 한미은행장이다."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이헌재가 회고록에서 밝힌 뒷사정이다.
▶합병만으로 부실이 해결되지 않자 정부는 공적 자금을 더 넣기 위해 은행 위에 지주회사 우리금융을 만들었다. 2001년 출범한 우리금융엔 행장 위에 회장 자리가 생겼다. 초대 회장엔 윤병철 하나은행 회장이 낙점됐다. 그는 '들러리를 섰다가 신부 된 꼴'이라고 회고했다. 애초 내정된 관가 쪽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그를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전화를 했지만 구색 맞추기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초대 회장은 경험 많은 민간 금융인이 맡아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막판 뒤집기'가 됐다.
▶그 뒤 박병원-박해춘, 이팔성-이종휘처럼 회장과 행장이 서로 다른 줄을 타고 왔다.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은행장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줄 대기 문화도 깊게 번졌다. 어느 행장은 회의에서 부행장들에게 "다른 줄 타고 온 것 다 안다"며 충성 서약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회장이 행장을 제쳐 놓고 부행장들 불러 따로 회의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지난주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기어이 차기 우리은행장 단독 후보로 결정됐다. 내정설이 퍼지더니 소문이 사실이 됐다. 이 부행장은 대통령 모교 서강대의 금융인 모임 '서금회' 회원이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챙긴다고들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국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고 장담했다. 그러면서도 금융위 사람들은 뒤에서는 청와대가 내정했다고 책임을 위로 떠넘긴다. 그동안 '관치(官治)금융'을 한탄했더니 이제는 권력자가 금융을 지배하는 '권치(權治)금융' 시대라는 말인가.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영업의 달인(達人)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이광구 행장 후보와의 관계에 대해 "영업에 관한 모든 비법을 전수해줬다"고 했다. 파격 발탁 인사로 임원에 승진시킨 사람도 그였다고 들린다. 그러나 이 행장은 자기가 공들여 키운 후배에 밀려 연임을 포기했다. 이 행장은 아끼는 후배에게 정치판의 낙하산 타는 비법, 키워준 사람을 뒤에서 밀어내는 법까지 가르쳐줬을까.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