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소설가 김훈이 이순신을 그려낸 밀리언셀러 '칼의 노래' 112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삼년 만에 오일장이 섰는데 달걀 한 개에 감자 세 알씩 바꿔갔다.' 눈 밝은 독자가 시비를 따졌다. "감자는 1824년 순조 때 조선에 들어왔다. 임란은 16세기 말 아닌가?" 김훈은 아차 싶어 다음 쇄(刷)에 고치려다 멈칫했다. '지적이 맞겠지…. 그런데 감자가 아니면 글맛이 살지 않으니 어쩐다?' 올여름 나온 최신판까지 소설 속 '감자'는 그대로다.

▶2005년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도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이순신·원균 관계, 선조 임금 성격을 놓고 시비가 많았다. 사료에도 없는 거북선 침몰 장면은 비판이 거셌다. 임란사(壬亂史)는 학계에서도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픽션으로 꾸미면 논란 위험은 더 커진다. 그 무렵 소설가 고정욱이 장편 '원균'을 냈다. 이순신의 실책을 파헤치고 원균을 맹장으로 치켜세웠다. 작가는 "왜곡된 사관(史觀)과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사상 최다 관객이 몰린 영화 '명량'을 상대로 배설(裵楔) 장군 후손이 고소장을 냈다. 역사 속 배설은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보름 전 병을 고치겠다며 뭍에 내렸다가 종적을 감춘다. 나중에 영남에서 권율 장군에게 붙잡혀 참수됐다. 그러나 후손들은 영화 속 배설이 이순신을 죽이려 하고 거북선에 불을 지르는 악인으로 묘사된 부분은 허위라고 했다. 사자(死者) 명예를 해치고 후손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감독·각본가·소설가 셋에게 책임을 따졌다.

▶'명량' 제작사는 '배설 장군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야 할 판이다. "창작물은 그냥 창작물로 봐달라"고 해도 막상 후손들은 그냥 봐줄 수 없는 모양이다. 역사 드라마·영화 속 인물의 후손이 고소장을 내는 일은 드물지 않다. 수백년 전 살던 인물이라도 직계 자손이라면 고소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실존 인물에 의한 역사적 사실보다 가상 인물에 의한 허구가 많은 게 드라마'라는 판례를 남겼다.

▶김훈은 소설 머리말에 '나는 내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라고 썼다. 다른 맥락에서 한 얘기지만 마치 '감자 오류'를 미리 내다본 듯하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오류가 불가피한 걸까. 반대로 후손은 1700만명이 본 영화이기에 더욱 '허구의 사실'이 자칫 '역사적 사실'로 굳어지는 걸 놔둘 수 없는 노릇이다. 고소장을 받아든 경찰과 법원도 그 언저리에서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