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주에서 발생한 노상(路上) 음란 행위 사건에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을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든 것은 초록색 T셔츠와 하얀색 바지 차림으로 건물과 엘리베이터를 돌아다니는 남자 모습이 찍힌 CC(폐쇄회로)TV 영상이었다. 옛날 같으면 주변을 탐문하며 증거를 수집했을 경찰은 제주 시내 CCTV 녹화 파일을 수거해 밤낮없이 뒤졌을 것이다. 몇 해 전 기자는 경기도 광명시의 CCTV 관제센터를 찾아갔다가 자정 무렵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남의 집 담을 넘는 남자 모습이 CCTV 화면에 보이자 몇 분 만에 경찰이 출동해 검거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도시 곳곳에서 카메라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CCTV뿐만이 아니다. 요즘 서울 시내버스에는 3~4대씩 카메라가 설치돼 실내뿐 아니라 거리 모습도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다. 여기에 가끔씩 뺑소니 사고 현장이 찍혀 경찰이 교통사고를 수사할 때 꽤 유용한 수단이 되곤 한다. 지난달 경남 창원에서 폭우(暴雨)로 시내버스가 전복됐을 때는 사고 직전 승객들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블랙박스 사진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카메라의 시선 아래에 놓인 사람들은 어디서 얼마나 많은 '눈'이 지켜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국민은 하루 평균 83.1회 CCTV에 노출된다는 통계도 있다. 현대사회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알 수 없는 '원형 감옥(파놉티콘)'에 비유되기도 한다.
요즘 이런 감시 카메라 영상은 경찰이나 공공 기관의 전유물도 아니다. 인터넷에선 김 전 지검장이 찍힌 CCTV 화면이나 창원 버스 침수 사고 현장 사진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세월호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도 '단원고 아이들 마지막 15분'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금세 찾아볼 수 있다. 일부 블랙박스 동호회 카페에선 끔찍한 교통사고 영상을 편집해 흥밋거리로 돌려보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태그가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현대인들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비극(悲劇)의 이미지를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소비'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 불과 10여년 전인데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 우리 스스로 그런 영상을 만들고 유포하고 있다. 영상 검색 기술의 발달로 키워드를 넣어 특정 언어가 들어간 문서를 검색하는 것처럼 영상을 검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실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민간 기업은 불법적 영상 파일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찾아내 고발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을 이용해 곳곳의 CCTV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그러는 사이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는 우리는 찍고 찍히는 데 무감각해지고 있다. 이제 CCTV를 '빅 브러더'라고 비판하는 것조차 우스운 일이 돼버린 느낌이다. 우리는 무수한 카메라의 시선 아래 갇혀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도 감시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무수한 감시자를 감시할 사람은 누구인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