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전도유망하던 주식 브로커 존 파우스트는 블랙 먼데이의 주가 대폭락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누가 봐도 악마임이 분명한 'X'란 사나이. X는 파우스트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는 스카우트를 제의하고, 파우스트는 그 유혹을 받아들인 끝에 점점 악(惡)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배우 세 명이 출연하는 창작 뮤지컬 '더 데빌'〈사진〉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의 월스트리트로 옮겨 재창작한 작품이다. 22곡의 삽입곡이 4인조 라이브 밴드와 코러스 4명의 사운드에 힘입어 무대를 가득 채우는 록 뮤지컬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화려하다. 연출과 대본은 국내 뮤지컬계의 1급 연출가 이지나가 맡았고, 작곡은 미국에서 활동한 젊은 음악가 우디 박이 참여했다. 여기에 마이클 리, 한지상, 송용진, 차지연 등 가창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이 포진했다.
지난 24일 공연에서 송용진(파우스트), 한지상(X), 차지연(그레첸)의 연기와 노래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세 배우 모두 고음과 중저음을 가리지 않고 심장이 터질 듯한 폭발적인 성량을 보였다. 차지연은 극 내내 거의 화장을 하지 않은 민얼굴로 나와 악마에게 능욕을 당하는 어려운 연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빛과 어둠의 배합만으로도 공포감을 느끼게 한 조명과 무대도 탁월했다.
하지만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이 시작되자 그대로 극장을 뛰쳐나가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극 시작 30분쯤 지나 X가 등장한 뒤부터는 줄곧 어둡고 처절한 분위기의 노래들이 반전(反轉)도 없이 계속돼 무대 위의 고통을 객석에 전이(轉移)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옥의 씨앗이 내 안에 자라나 유황과 불기둥이 나를 태우네"처럼 지나치게 관념적인 삽입곡의 가사가 동어 반복을 거듭했다. 같은 록 뮤지컬인 '머더 발라드'나 '트레이스 유'의 분량처럼 이 뮤지컬은 지금보다 한 시간은 줄였어야 했다.
▷11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공연 시간 150분(인터미션 포함),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