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지난해 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뽑혔을 때 다른 추기경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리둥절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게 선뜻 납득이 안 됐다.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를 먼저 생각해야 할 분이 스스로를 먼저 챙기는가 했다. 그러나 올봄 교황 선출 1주년을 맞았을 때도 그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오"라는 짧은 트위터 글을 남기고 시골 수도원으로 훌쩍 떠났다. 한국 방문 중에 충북 음성 꽃동네에 가서 수도자들을 만났을 때 마지막 부탁도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제발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흔히 신부는 평신도를 위해 기도하고, 교황은 성직자와 신도를 위해 기도하는 줄 알았다.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지만 사실은 기도의 손길은 '아래'로 향하고, '아래'를 위한 의식이라 여겼다. 어떤 종교든 평신도 입장에서는 "신부님·목사님·스님,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하는 일방통행에 익숙해져 있다. 성직자도 때로는 신도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구할 수는 있겠지만 교황까지 그러는 줄은 몰랐다.
세속에서도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해야 할 때가 있다. 세월호 생존자를 찾으러 컴컴한 물속으로 들어가는 잠수부는 갑판에 서 있는 동료에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위해 기도해줘." 불길에 휩싸인 빌딩 안으로 간단한 장비만 걸친 채 생존자를 구하러 들어가는 소방관도 건물 밖에서 자신과 교신을 주고받는 동료 소방관에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게." 평생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싸워온 분들, 남북 화해와 북한 인권을 위해 몸 바치신 분들, 그분들의 기도가 바로 교황이 말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과 같은 반열에 있는 것이다.
온몸을 던져서 난국을 헤쳐나가려고 제 한 몸 희생을 무릅쓰는 사람들만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할 수 있다. 그들은 '나를 위한 기도'가 곧 우리 '운명 공동체를 살리는 기도'와 일치할 때 그런 부탁을 한다. 이순신이 겨우 12척의 배로 왜선 300척을 맞으러 맨 앞에 나갈 때 뒤에 남은 부하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말할 수 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 말을 교황의 당부로 바꾸면 바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가 된다.
국가 지도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이때 비로소 '나를 위한 기도'가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이고,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된다. 같은 믿음에서 가톨릭 신자 대통령은 국민에게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하고 간구하고 매달릴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잠을 못 이루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요청할 수 있고, 또 요청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형제 여러분, 나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지만, 여러분도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달라"고 했다. 에베소서에서도 바울은 "내가 입을 열 때마다 기쁜 소식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도 바울을 닮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도 대통령의 꿈, 대통령의 웅지(雄志)가 이뤄지도록 국민들에게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교황이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