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키리바시는 한반도 300분의 1 면적에 인구는 10만명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농부 이와네 테이시오타(37)는 2007년 뉴질랜드 이민을 결심했다. 기온이 오르고 해수면이 급상승하면서 키리바시가 수몰(水沒) 위기에 내몰린 것이었다.

힘들여 일군 경작지에는 바닷물이 차올랐고, 바닷물을 머금은 땅엔 씨조차 뿌릴 수 없었다. 소금기 가득한 지하수는 식수나 농업용수로 쓸 수 없었다. "키리바시를 비롯해 투발루·나우루 등 이웃 섬나라들이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뉴스도 쏟아졌다. 고국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2007년 취업 비자로 아내와 뉴질랜드로 건너갔다. 자신은 채소 농장 노동자, 아내는 식당 여급으로 억척스럽게 일하면서 세 아이를 낳았다.

수몰 위기에 처한 고국 키리바시를 떠나 뉴질랜드로 이주한 뒤 난민 인정 소송을 했지만 패소한 이와네 테이시오타(왼쪽에서 둘째)와 가족들.

하지만 뉴질랜드의 이민법 규정이 강화되면서 이 가족들은 영주권 획득에 실패했다. 2010년 비자가 만료되자 테이시오타의 다섯 식구는 한순간에 '불법 체류자'가 됐다. 이듬해 그는 뉴질랜드 정부에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망명 신청을 냈다. 태평양 섬나라들의 국토 유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테이시오타 같은 경우를 두고 '환경 난민'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그의 망명 신청을 거부하자, 테이시오타는 행정 소송을 냈다. 그는 "키리바시 정부가 (환경 변화로) 위기에 처한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유엔 난민 기구가 정의한 난민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테이시오타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한 데 이어, 지난 5월 항소심마저 기각됐다. 최종 패소한 그의 가족은 추방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3년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국제 비정부기구(NGO)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가족들은 '환경 난민'의 상징적 존재로 떠올랐다. 테이시오타의 부인 에리카는 독일 방송 인터뷰에서 "물에 잠겨 사라지는 고향을 등져야 하는 섬나라 주민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난민 판정에 대한 뉴질랜드 법원의 시각은 구태의연했다"고 비판했다. 테이시오타는 유엔인권위원회에 난민 지위를 부여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로 했다.

수몰 위기에 처한 그의 고국 키리바시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키리바시 정부는 자국민들이 이주할 영토를 마련하기 위해 같은 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20㎢ 땅을 사들였다. 해수면 상승은 태평양 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에 따르면, 오는 2100년까지 지구 해수면은 98㎝ 상승해서 지구 면적의 4%가 물에 잠길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의 해수면도 1.36m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조광우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박사는 "해수면이 1m만 상승해도 항만·도로·활주로 등 연안 시설들이 당장 위험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