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1위로 출발한 책(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초가을까지 5위 이내로 달리다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2월부터 등장한 책(꾸뻬 씨의 행복여행)은 넉 달 거푸 선두를 지키다 한두 계단씩 밀려났다. 6월 예약 판매만으로 3위까지 올랐던 책(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은 굵고 짧게 '여름 장사'를 했다. 8위로 들어왔다가 1위까지 치고 올라간 책(정글만리), 불의의 사고로 낙마한 책(드림온)도 있었다.

출판은 예측 불가능한 장거리 경주다. 1년치 월별 베스트셀러 1~10위 순위는 경마(競馬)를 닮아 있다. 순위는 날마다 엎치락뒤치락하고 언제 어떤 다크호스가 나타나 판을 흔들지 알 수 없다. 교보문고 통계를 기준으로 올해 1~11월 이 '출판 마라톤'의 후일담을 분리수거했다.

죽은 책, 살아나다

시장에서 죽은 책도 스타 배우가 쥐고 흔들면 벌떡 일어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올해 입증됐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꾸뻬 씨의 행복여행'. 2004년 출간된 이 구간(舊刊)은 시청률 45%를 찍은 연속극 '내 딸 서영이'의 여주인공(이보영)이 한 TV 책 프로그램에 나와 추천하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강희진 열림원 부장은 "그 '벼락같은 축복'으로 올해에만 100만부가 판매됐다"면서 "행복이 화두인 책이라 독자의 공감이 더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지구력의 왕은 혜민

베스트10에 진입하기도 힘들지만 오래 버티기는 훨씬 더 어렵다. "베스트셀러에서 밀려날 때는 수직 낙하에 가까울 만큼 가파르게 떨어진다"고 출판인들은 말한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그래서 괴력에 가깝다. 지난해 1월에 나온 이 에세이는 힐링 열풍을 이끌면서 그해에만 6개월이나 1위를 달렸다. 그런데 올해도 1월부터 10월까지 '멈추지 않고' 베스트10을 사수하다 11월에야 사라졌다. 쌤앤파커스는 이 책이 올해에만 78만부 판매됐다고 밝혔다.

올해는 '소설의 귀환'이라고 할 만큼 베스트10을 소설이 다수 점령했다. '빅 픽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색채가 없는…' '28' '인페르노' '정글만리' '살인자의 기억법' '제3인류'…. 하지만 전략적으로 TV광고를 한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2~3개월 만에 베스트10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정글만리'(전3권)는 90만부, '색채가 없는…'은 40만부를 돌파했다.

수필은 길고 소설은 짧다?

올해 베스트셀러는 '꾸뻬 씨의 행복여행'을 필두로 방송·영화 덕을 본 책이 많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과 일본 그림동화 '폭풍우 치는 밤에'는 드라마에서 등장해 갑자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위대한 개츠비'는 영화 개봉과 맞물려 독자를 잡아당겼다.

11월 기준으로 베스트셀러 1~3위는 법륜 스님 에세이 '인생수업', 베르베르 소설 '제3인류1', 김은주 에세이 '1㎝+'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올해 베스트셀러는 '수장소단'(수필은 베스트셀러 수명이 길고 소설은 짧다)을 보여준다"면서 "이른바 스크린 셀러나 광고에 의존한 책이 많았다는 것은 열성 독자층이 줄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