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고개' '줄다리기' '용산 일제강점기 군사 유산' '윷 문화' '삼국지 관우 관련 신앙 공간'…. 전국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유적·유물의 일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유산(무형·기록유산 포함)'으로 등재된 유산은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모두 36건. 잠정 목록에 올라 있는 15건을 포함, 현재 전국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산은 60건이 넘는다. "유네스코에 신청하겠다"고 지자체장이 '선언'한 경우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 같은 '등재 열풍'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 최초로 남녀 합동 예배가 열렸던 120년 역사의 서울 동대문교회가 건물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서울시가 '주변 정비' 차원에서 교회를 헐고 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완공된 후 양정모(레슬링) 차범근(축구) 현정화(탁구) 임춘애(육상)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스케이팅) 등 한국 스포츠 스타의 산실(産室)이 돼온 태릉선수촌도 철거 위기에 놓였다. 선수촌이 있는 곳은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泰陵) 권역. 태릉을 포함,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유네스코 측이 '주변 자연환경을 보존하라'는 권고를 내렸고, 이 때문에 문화재청이 몇년째 철거를 저울질하고 있다. 체육계는 "선수촌은 현대 한국 스포츠 발전의 상징이다. 철거는 말이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나중에 지은 근대 유산은 없애도 되나"

"특정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 또 다른 근대 유산을 허무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정부와 각 지자체·단체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강박 때문이다.

철거 앞둔 서울 동대문교회… 서울시의 한양도성 복원 사업으로 내년 1월 철거 예정인 서울 동대문교회(가운데 언덕 위 건물). 서울 성곽(점선 부분)이 인접해 있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격을 따기 위해 우리 근현대사(近現代史) 유산을 폐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화 사대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각국만의 자연·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취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가 한국에서는 역설적으로 후대의 문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2010년 파주 삼릉에선 왕릉 복원을 이유로 100년 넘게 주민이 이용하던 관통 도로를 폐쇄해 반발을 샀다. 철거가 논의되다 뒤늦게 문화재가 되는 '역전극'도 벌어진다.

1962년 지은 서울 성북구 의릉 내 옛 중앙정보부 강당은 당초 능 복원을 위해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92호가 됐다.

"올림픽 메달처럼 경쟁해서야"

‘세계유산 올인(all in)’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우리나라처럼 세계유산을 올림픽 메달 따듯 달려드는 나라도 드물다”며 “정말 가치 있는 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려는 의식부터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등재 열풍'의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 유치. 199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은 등재 당시 관광객이 37만명에서 지난해 132만명으로 3.6배로 늘었다. 남한산성이 등재될 경우 관광객 수가 현재의 연 15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증가한다는 예상도 있다. 여기에 세계유산 등재를 지자체장의 '업적'으로 홍보하려는 심리도 한몫한다.

그러나 등재 추진이 오히려 문화재 보호 문제를 더 꼬이게도 만든다. 정부는 울산 반구대암각화의 보존 대책으로 '가변형 제방'안을 내놨지만 일각에선 "주위 환경을 변화시켜 세계유산 등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