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43년이 지났고, 멤버 둘은 말 없는 사자(死者)가 됐지만 대중은 여전히 궁금해한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정말 앙숙이었나? 왜 존 레넌은 조강지처 신시아를 차고 오노 요코에게 간 걸까? 이들은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의 마지막 녹음을 앞두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진을 찍으며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비틀스의 비서 겸 팬클럽 관리인으로 1961년부터 10년간 일하며 그들의 사생활 깊은 곳까지 지켜봤던 여인 프레다 켈리는 이 질문들에 상당 부분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비틀스 해체 후 40여년 동안 굳게 입을 다물었던 그가 '아주 조금' 입을 열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상영작인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원제 Good Ol'Freda·감독 라이언 화이트)'를 통해서다.
24일 상영회를 앞두고 입국한 그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불화설을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라이벌이라뇨? 불화라고요?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동료였어요. 그 둘에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까지 비틀스는 재능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하나의 완벽한 조합이었죠. 10대 때부터 함께 뭉치며 음악을 해온, 그래서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쇠자물통처럼 굳게 닫혀 있던 프레다 켈리의 입을 근질근질하게 한 건 세 살배기 손자 나일. "이 아이가 한구석에서 숄을 두르고 고양이를 무릎에 앉힌 날 보고 '할머니는 참 별로'라고 생각하면 큰일이죠. 그래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할미가 소싯적에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는지를."
열여섯 나이에 리버풀의 인디 밴드 비틀스의 비서 겸 팬클럽 관리인으로 발탁돼 비틀스가 해체한 1970년까지 10년을 같이한 프레다이다. 다큐는 리버풀의 엠파이어극장, 팬클럽 뉴스와 사인북 등 '유물'들이 담긴 낡은 다락방 등으로 그의 발길을 좇는다.
그는 쏟아지는 팬레터에 '비틀스의 대변인' 입장으로 일일이 답장을 썼고, 팬들의 선물을 관리하고, 팬클럽 소식지도 발행했다. '이걸 링고 머리맡에 두고 사인을 받아 보내달라'며 베갯잇을 보낸 팬의 요청까지 들어줬다.
매니저 엡스타인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던 멤버들의 비밀 사생활도 프레다 기억엔 또렷하다. 그는 링고가 리버풀의 미용사 모린 콕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과정을 봤고, 존 레넌이 첫 부인 신시아와 결혼 전 또 다른 여성과 비밀 연애를 하는 것을 눈치챘으며, 폴 매카트니의 깜짝 결혼 발표 과정을 꿰고 있었다.
그는 "제아무리 비틀스라 해도 그들만의 인생이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존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 미미 이모와 함께 살았어요. 다들 무서워했지만 난 아니었어요. 조지의 부모님은 유명세를 즐겼죠. 몰려든 팬들에게 차를 대접할 정도였으니까요. 링고의 어머니와는 연애 상담도 할 정도였죠. 물론 링고는 아니고요."
67년 엡스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비틀스의 단결력은 약화됐다. 프레다는 1970년의 어느 봄날 둘째 임신 사실을 알리며 사의를 밝혔고, 비틀스의 해체 사실을 팬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의 마지막 업무가 됐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성격이라 기억 속에서 비틀스를 지웠고 심지어는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는 그에게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일을 맡겠느냐"고 묻자 눈이 동그래졌다. "오오, 글쎄요… 당연히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