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위험이 있는 화학물질을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만든 법에 대해 재계가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하자, 정부와 여당이 한발 물러나 규제를 최대한 완화해주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5~6월 화학물질 등록·평가법(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을 제정 또는 개정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터지고, 올 초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신제품·연구 개발 등으로 미량 사용하는 물질까지 깐깐하게 등록하게 하자,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이 더뎌지는 등 영업 활동에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했다.
◇정부 "입법 취지를 살리며 산업계도 배려"
정부와 새누리당은 24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화학 사고가 발생하면 매출액 대비 5%까지 과징금(화관법)을 매기기로 한 조항은 대통령령을 통해 고의·반복적으로 위반한 기업들에 한해 '예외적인 경우'에 적용하고, 소량이나 연구개발(R&D)용 화학물질 등록 기준은 완화해주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재계는 "예전보다는 진일보(進一步)했지만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이날 당정협의에서 환경부는 당초 '화학물질 안전관리'라는 입법 취지는 살리면서도, 기업 경쟁력 등을 고려해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만들 때 기업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매출액 대비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 화관법은 위반 기업에 대해 계도·경고 중심의 처분을 우선으로 내리고, 과징금을 매기더라도 걸린 횟수나 과실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또 R&D용으로 쓰는 화학물질은 하위 법령을 통해 등록을 면제하는 쪽으로 보완하고, 0.1t 이하로 쓰는 소량 화학물질은 등록은 하되 제출 자료를 최소화하고 등록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업들 불만이 컸던 영업 비밀 침해 우려에 대해서도 기업이 안전관리에 꼭 필요한 유해성·제한용도·취급 주의사항 등에 관한 정보 위주로 제출하도록 하고, 제공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들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기업 입장을 반영해 이같이 합의한 것"이라며 "국민 안전과 기업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재계 "여전히 부담 커"
그러나 재계는 당정 협의에서 나온 보완 사항에 대해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규제가 과도하다"며 "시행령 등 하위 법령 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이 3.3%인 현실에서 매출액 5% 과징금을 규정한 법 조항은 너무 가혹하다"며 "과도한 과징금이 여전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R&D용이나 소량 신규 화학물질에 대한 등록 절차를 면제하거나 간소화하기로 한 부분도 여전히 등록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 운영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경부 나정균 환경보건정책관은 "현재 산업계와 시민단체, 전문가 등과 화평법·화관법 하위법령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위 법령을 만들지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우려 사항도 반영하고 국민 안전도 지키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