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지배하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이고 해방과 혁명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인격이 고결하지 않고 운동이 혁신적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그 이념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이영훈(62)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좌파 한국사 교과서에 맞서 2008년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출간을 주도했고, 이후 좌파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그가 약 500쪽 분량의 새 한국 현대사 책을 냈다. '대한민국 역사: 나라 만들기 발자취 1945~1987'(기파랑)이다. 5년 전의 '교과서'에서 미진했던 서술을 보강한 본격 연구서다.
―왜 경제학자가 역사서를 냈나?
"아무도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좌우합작론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감성적인 공동체 의식인 '민족'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더 상위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독재를 옹호한 정치 이념이란 비판도 받는데.
"그렇지 않다. 20세기의 세계사는 정치·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는 국가 체제가 사람들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경험적으로 입증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문명사 대전환의 과정이었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전통 체제가 해체되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통합이 이뤄진 것이다. 그 토대 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 분단을 고착화한 것은 아닌가?
"분단을 향해 먼저 달린 쪽은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북한은 1946년 2월에 실질적인 정부를 세웠고 3월에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해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추방했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 주도 세력은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하게 세운 뒤에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민족 전체가 공산화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맞았다."
―이승만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은 아닌가?
"그의 과오는 분명히 기록했다. 그러나 건국 후 이승만이 주장한 대통령중심제와 민주당 세력이 주장한 의원내각제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 구조가 있었고, 부통령 직선제라는 기형적인 제도가 생겨나기도 했다.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중심제를 복원했을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물러났지만 그가 옹호했던 정부 형태는 받아들여진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복원된 대통령 직선제는 결국 '이승만 유업(遺業)의 발전적 계승'이었던 셈이다."
―김구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이 책의 서술은 주요 논쟁 대상으로 떠오를 것 같다.
"그는 민족적 대의에 입각해 남북 협상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론 공산주의의 선전 선동에 이용됐다.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을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한 자'라고 매도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대한민국은 살아남았으며 번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