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우리 한 번도 못 만났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 못 했다. 나는 너를 내내 잊지 못하며 살고 있다."
백발(白髮) 노파는 작은 상 위에 공책을 펼쳤다. 삐뚤빼뚤 큼지막한 글씨를 쓰기 시작한 유송녀(94)씨 손에는 힘이 꽉 들어가 보였다. 62년 전 헤어진 딸에게 쓰는 편지는 '보석 같은 딸 옥주야'로 시작했다. 편지를 쓴 유씨는 울음 대신 '허허' 너털웃음을 웃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유씨는 1951년 가을 피란을 오면서 아홉 살짜리 딸 이옥주(현재 나이 71세)씨를 친척 집에 잠시 맡겼다. "내일모레면 찾으러 오겠다"며 맡긴 딸을 못 본 지 62년째다. 유씨의 아들 이진하(65)씨는 "어머니가 누나를 만나기 전에는 세상을 못 뜬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신다"고 했다. 유씨의 애틋한 마음은 12분짜리 '영상편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매해 3000여명의 이산가족이 고령(高齡)으로 세상을 뜬다. 그런데 이들이 직접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대면(對面) 상봉은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2010년 금강산 상봉을 끝으로 끊겼다. 화상 상봉도 2005~ 2007년 7차례가 전부였다.
이에 대한적십자사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영상에 담는 '영상편지' 제작을 시작했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한 생존자 약 7만5000명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한 결과, 1만6823명이 영상편지를 제작하겠다고 희망했다. 이들 가운데 나이와 건강, 가족관계 등을 고려해 우선 영상편지 815편을 제작했다.
홍종순(88)씨는 북에 있는 남편을 몹시 그리워했다. 홍씨는 영상에서 "(북한에서 새로) 장가가서 (북한) 여자랑 살아도, 자식들 많이 낳아 줄줄 달아 와도 나 말 안 한다.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홍씨의 아들은 "엄마가 혹시 통일돼 아버지가 고향에 찾아오면 집을 못 찾을까 봐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옛날 집터에다 집을 두 번이나 바꿔 지어 가면서도 그 터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옥(84)씨에게는 북에 끌려간 아들이 평생 한(恨)으로 남았다. 김씨는 "네가 기술 배운다고 할 때 배우게 할걸…. 괜히 이거(오징어) 잡으러 가서…. 네가 (그래서 북한으로) 갔잖느냐"며 울먹였다. 김씨의 아들 박흥식(63)씨는 1960년대 강원도 고성에서 오징어잡이를 나갔다가 납북됐다. 김씨는 영상편지에서 "우리 아들 좀 보내주세요. 보고 싶습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강홍찬(79)씨는 살아있다면 100세인 어머니 이복길씨와 동생들을 찾고 싶어 했다. 강씨는 "동생들아. 내가 없더라도 어머니 잘 모시고…. 우리 형제들이 전부 만나서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지낼 수 있는 그날을 기원하면서 통일될 그날을 기다리자꾸나. 너희들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길 바랄 뿐이다. 고맙다"고 말했다.
적십자사는 이번에 제작한 영상편지를 남북 적십자 간 합의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달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최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상당 기간 '전달되지 못하는 편지'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조선중앙통신은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모습을 담은 영상편지를 제작해 북한에 보내기로 한 것에 대해 작년 12월 "(여당의) 재집권 기도를 위한 유치한 술책"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적십자사는 우선 남북 화상상봉이 치러졌던 적십자사 본사의 화상상봉센터에서 방문객을 위해 영상편지를 틀어줄 방침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이산가족 가운데 80%가 70대 이상의 고령"이라며 "올해 영상편지 5000편을 추가로 만들고, 가족들의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통일부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