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은 팀 역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얼떨떨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가 1집 앨범을 내고 팀 이름을 정하던 1987년. 제작자 산울림 김창완과 김광석·김창기·박경찬·박기영·유준열·이성우 등 여섯 청년이 밤새 알코올과 사투를 벌이고 뻗은 이튿날, 다른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팀 이름이 '동물원'으로 정해졌더라는 것.
이듬해 봄 대학로 샘터소극장 첫 콘서트 무대에서도 얼떨떨했다. 100석 극장의 빈틈을 죄다 없애버린 400여 명의 여학생 팬이 뿜어내는 후끈한 기운에 청년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가장 최근의 얼떨떨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25주년 기념 콘서트 '종로에서' 첫날(지난 16일) 서울 관철동 '반쥴 로프트' 무대였다. 박기영·배영길·유준열은 관객의 스마트폰 액정이 낱낱이 보이고, 무대와 객석 사이 거리가 1m가 채 안 될 정도의 초근접 소극장 무대에 섰다. "이렇게 관객 가까이서 노래 부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25년 전 첫 무대처럼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긴장도 잠깐, '널 사랑하겠어'를 시작으로 '혜화동'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별빛 가득한 밤에' 등을 이어가며 관객들과 함께 시간을 거슬렀다. 블루스 색으로 진득한 유준열, 담백한 박기영·배영길의 파스텔톤 음성이 따로 또 같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로 헛헛한 마음은 따뜻한 무엇인가로 채워졌고, '오케스트라'는 기타 두 대와 피아노, 멜로디온, 젬베만으로 충분했다. 1부와 2부 사이 하피스트 이기화가 연주한 '거리에서'는 하늘에 있는 김광석 목소리와는 또 다른 애잔함을 안겨줬다.
―김광석·김창기가 탈퇴했지만 팀은 흔들리지 않고 26년을 이어왔다.
유준열 "너무 절박하지 않았던 것, 그게 팀이 망가지지 않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음악에 욕심이 있던 (김)광석이는 길이 달랐다. 그래서 결별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배영길 "26년을 함께하면서 멤버 각자의 인생관은 바뀌었어도 음악은 그대로였다고 자부한다. 훗날 지금껏 해왔던 것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자부해도 긴 안목으론 우리가 불러왔던 노래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박기영 "우린 늘 비주류였다. 강의실서 열공(열심히 공부)한 것도, 가열차게 투쟁한 것도,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그렇다고 음악에 매달린 것도 아니었다. 경계인의 정서랄까?"
―그 경계인의 정서가 동물원 음악만의 색깔을 만들어낸 것일까?
박 "우리 시대의 포크는 크게 두 부류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정태춘·안치환처럼 거리에서 시대와 호흡했던 부류, 그리고 시인과 촌장·어떤날처럼 예술로 승화시킨 부류…. 우린 그 어디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 맞닿은 제3의 길이지. 그런데 결국 그게 다수이지 않나."
동물원은 이날 공연에서 '안구건조증'(유준열) '햇살 1g'(박기영), '책 고르는 여자'(배영길) 등 멤버 각자가 작곡한 신곡 3곡도 발표했다. 이전 작품들처럼 애잔하고 소소하고 맑은 분위기여서 따로 소개하지 않았다면, 그저 B면 어딘가에 아깝게 묻혔다 빛을 본 노래로 여겨질 뻔했다.
―앨범 소식이 오랫동안 뜸했다.
배 "올해 계절별로 각자 한 곡씩 새 노래를 발표할 거다. 그러면 겨울쯤 12곡이 완성된다. 앨범 한 장 분량이지."
유 "가장 최근에 나온 정규 앨범이 2003년이었다. 용필이 오빠처럼. 하하. 우리 마음 역시 '바운스(bounce)' 하네." 공연은 26일까지. (02)516-3963,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