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애, 분류 기호 1-4, 전문 분야 주부 9단'.
임정애(64·서울 상계동)씨는 노원정보도서관 지하에 있는 휴먼라이브러리에 이렇게 등록돼 있다. 이른바 '휴먼 북(human book)'. 노원구 주민들은 지난해 3월 개관한 이 도서관에서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한다. 소장된 휴먼 북 가운데 대출 1위(총 7회)를 달리고 있는 임씨는 "새내기 주부들이 '밑반찬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빌리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 관리비 줄이는 법에 나름 자신이 있어 휴먼 북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그쪽 관련 문의는 영 없다"면서 웃었다.
"제일 먼저 저를 대출한 분도 새댁이었어요. 감자조림을 하면 타거나 덜 익어서 고민이라는 겁니다. 저희 집에서 해먹는 식으로 가르쳐줬어요. 소스는 미리 만들어둬라, 찬물에 한 번 헹궈 녹말가루를 빼라, 약한 불에 올려놓고 저으면서 조려라…."
아파트 경비원에게 도시락 반찬 만드는 법을 일러주기도 했고 젊은 아빠들을 모아놓고 간장 담그기를 시연해 보인 적도 있다. 임씨는 "가족에게 그런 음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들이나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대출'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경험은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종이책 대신 사람을 빌리는 도서관으로 2000년 덴마크에서 시작됐다. 일대일로 만나 지식과 함께 경험을 나누는 것이 휴먼 북의 장점이다. 초등학교 교장은 미취학 아동의 학부모와 상담을 해주고 영화평론가는 '영화 200% 재미있게 보는 법', 기자는 언론인의 하루에 대해 들려준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금융·부동산, 봉사, 언론, 건강, 문화예술, 스포츠·레저, 정치, 법조, 종교, 교육, 학술 등 19개 분야의 휴먼 북 350명이 재능을 무료 기부한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하응백 문학평론가, 탁무권 노원문고 대표,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비롯해 주민·공무원·변호사·의사·교장에 심마니도 있다. 독자가 대출 신청을 하면 적당한 날을 잡아 30~40분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안철수 의원이 휴먼 북에 이름을 올렸다.
휴먼 북은 때가 타거나 해어지지 않는다. 이 '주부 9단'은 "낯선 사람을 만나 지혜를 나눠주고 질문에 답하면서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고 했다. "젊은 주부를 만나면 내가 배우는 것도 있어요.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는 열정이 참 예뻐 보입니다. 나도 즐거우니 그게 보람이지요."
임씨는 오는 25일 광운전자공고와 월계고에서 열리는 '휴먼 북과의 대화' 자리에 나선다. 자신이 대출하고 싶은 휴먼 북으로는 안 의원과 최수전 상계백병원 내과 교수를 꼽았다. "안 의원에게는 '새 정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고 최 교수에게는 호흡기 질환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요. 제가 감기에 잘 걸리는데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을 30분 이상 만난다는 건 언감생심 불가능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