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듣는다'는 사람보다 '예전에 참 많이 들었지'라고 말하는 이가 더 많은 게 라디오다. 그 '예전' 얘기하는 이 중엔 "요즘엔 음악 안 틀고 출연자들끼리 시시덕거리기만 하기 때문"이라고 투덜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여름 CBS 음악FM의 입사 5년차 PD 이지현(31)은 가을 개편 시즌을 앞두고 "제대로 된 심야 음악프로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프로그램 제안서를 냈고, 방송국은 '그래 어디 한번 혼자서 잘해보라'며 자정~새벽 2시를 통째로 떼어줬다.

이지현이 PD·DJ·작가·엔지니어까지 1인 4역을 하는 '한밤의 음반가게'는 그렇게 탄생했다. 작년 10월 시작해 사연 들려주고 신청곡 틀어주는 기본 뼈대에, 깊지도 얕지도 않게 음악 얘기를 들려주며 조용히 인기몰이 중인 가게 '점원' 이지현을 최근 서울 목동 CBS에서 만났다.

'한밤의 음반가게'를 진행하는 이지현 PD가 스튜디오 안에서 포즈를 잡았다. 그는“라디오가 위로받고 싶을 때 찾는 치유의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송할 때 '주변에 정말 아무도 없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아무도 없어요. 외롭지 않아요. 인터넷으로, 카카오톡으로 쉴 새 없이 사연과 신청곡이 들어와 마음이 따뜻해져요. 음악이라는 끈으로 다들 연결된 거잖아요."

이름처럼 '음반가게' 같은 프로다. 스피커를 바깥에 내놓고 끊임없이 음악을 틀어주고, 120분짜리 공테이프를 최신 가요·팝송들로 가득 채운 해적판 컴필레이션 앨범도 팔던 그 옛날 길모퉁이 음반가게처럼, 옛노래부터 요즘 노래까지 국적(國籍)을 가리지 않고, 손님 신청곡과 '점원' 취향이 담긴 노래들을 적절히 골라 2시간을 채운다. 덜 알려진 명곡을 소개하는 'B면 첫 번째 노래' 등 코너들도 철저히 음악 중심이다. 시카고·에어 서플라이·이승철 등 '많이 듣는 노래'만 신청하는 사연들도 통제 대상이지만, '니들은 이런 거 모르지' 식으로 내공을 뽐내는 사연·신청곡도 그리 환영받지 않는다는 게 점원 이지현이 일러준 팁.

학창 시절 헤비메탈과 하드록에 심취했고, 유희열·이소라의 심야 라디오 프로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라디오 키드'인 이지현. 음악PD 내공이 깊다고 해서 명DJ 자질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나른한 듯한 목소리 때문에 한 청취자가 "옆에서 함께 들으며 수다 떨던 언니가 잠들어버렸다"고 '항의'했고, 다른 청취자는 "처음에는 목소리 때문에 당신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젠 들을 만하다"며 '격려'했다. "엄마 때문에 듣게 됐는데 아저씨 목소리 웃긴다"는 학생 청취자까지 생겼다.

"대체로 결론은 '목소리가 자꾸 거슬렸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나쁘진 않다'는 거죠(웃음). 음악의 힘인 것 같아요.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남들이랑 같이 듣는다는 것이 치유가 많이 되거든요. 전 믿고 있고 바라요. 사람들이 깊은 밤엔 TV를 끄고 예전처럼 라디오로 돌아올 거라는 것. 그래서 우리 가게 외에 다른 음반가게들도 북적이게 될 거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