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천사표 며느리(왼쪽)를 연기했던 심이영은 '백년의 유산'에선 시어머니에게 막무가내로 히스테리를 부리는‘막장 며느리’로 180도 변신했다.

미혼인 이 여배우는 작년과 올해 극(極)과 극(極)의 며느리 연기로 이름을 알렸다. MBC 주말극 '백년의 유산'에서 '막장 시어머니 잡는 막장 며느리'라는 독특한 캐릭터 '마홍주' 역의 심이영(33)이다.

전작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한 역할은 생활력 빵점짜리 남편에게 순종하는 뽀글파마머리의 맹한 천사표 둘째 며느리. 요즘도 일부 시청자는 "그 며느리가 그 며느리?"라며 뒤늦게 무릎을 친단다. 최근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심이영의 얼굴에는 뒤늦게 핀 꽃 같은 미소가 가득했다.

"어머님들이 많이 좋아하세요. 본인들이 며느리 시절 당한 것을 떠올리며 대리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대드는 며느리는 거의 없잖아요?"

'마홍주'는 드라마 시작 뒤 급작스럽게 설정돼 18부부터 등장한 캐릭터. 악마 같은 시어머니(박원숙)의 음모로 쫓겨난 비련의 여주인공(유진) 자리를 꿰찬 재벌가 딸 역할이었다. 감독의 주문은 "좋은 집안의 얌전한 딸이지만 약간 히스테릭한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는 것. 그는 연구 끝에 시아버지 제삿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제사 지낼 기분 아녜요",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엔 "씨받이 하러 결혼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눈 부라리며 대들고, 시어머니가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면 더 세게 내리치며 악쓰는 마홍주를 연기했다. 시청자들은 악마 같은 시어머니를 녹다운시키는 그의 연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이영은 인기 곡선으로 치면, 'U자형' 배우다. 고교 졸업 후 제과 기술도 배우고, 세무사 사무실에서 경리도 보다 연기 학원을 다닌 그는 2000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실제상황' 오디션에 덜컥 합격했다. 하지만 데뷔 뒤 시트콤과 단막극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각인하지는 못했고, 그 사이 10년이 후딱 지났다.

심이영이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연기자뿐 아니라 생활인으로 더 많이 감사하고 기뻐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고 했다.

"조급했고 좌절했던 20대였죠. 그런데 돌아보니 잊고 있던 게 있었어요. 데뷔가 너무 수월했던 거죠. 그 감사함과 즐거움을 생각지 못하고 그저 성과가 안 좋으니 괴로워했던 거죠. 좋아서 시작한 일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좁은 시선에 갇혀 있었던 거죠."

서른을 넘기고 제대로 꽃망울을 피웠다. 2010년 삼각관계를 통해 인간 심리를 내밀하게 그린 영화 '두 여자'에 정준호·신은경과 출연해 호평받았고, 잇단 주말극 출연으로 그를 아는 이는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촬영을 시작한 멜로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고, MBC 에브리원 '오늘부터 엄마아빠'에선 가상 엄마·아내 역을 맡아 예능으로도 발을 넓혔다.

"이럴 때일수록 첫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라고 다짐하는 심이영. "13년 전 김기덕 감독님이 완전 무명인 저를 뽑으며 '어떤 색을 입히든 그 색이 나오는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라고 말씀하셨죠. 그게 제 길인 듯해요. 무슨 색깔이든 채색이 가능한, 내 색깔이 무한한 도화지 같은 배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