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어느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의 한 중식당. 국회의원 7명이 모여 앉았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의원들이었다. 소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을 비롯하여 김용태·김종훈·강석훈(이상 새누리당), 강기정·민병두·김기식(이상 민주당) 의원이었다.

이날 만남은 대선 당시 여야 후보가 공통으로 내세운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위해 의견을 나눠보자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2시간여에 걸친 대화의 결론은 이랬다.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사 등기 임원의 연봉을 공시토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도 함께 통과됐다. 주가조작으로 얻은 이익금을 무조건 전액 벌금으로 환수토록 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4월 임시국회 개회 3일 만의 속전속결이었다.

이 개정안들은 그동안 전경련 등이 '자본주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그러나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는 이견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1월 말 회동에서부터 이미 큰 흐름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법안이 통과되자 여야 원내대표단이 놀랐다. 법안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속전속결로 통과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무위를 제외한 양당 원내대표실 관계자들은 대부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무위에 법안이 상정된 사실은 알았지만 10일 회의에서 전격적으로 통과될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고 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위헌 여부, 법률 간 상충 여부 등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법리를 다듬는 법사위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나는 법안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특히 연봉 공개 법안은 문제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임원 연봉 공개'는 여야 대선 후보의 공약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를 둘러싸고는 민주당이 범위 확대를 주장했으나 "법 체계상 무리가 있다"는 새누리당 측 설득을 받아들였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들이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되면 대기업들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총수와 등기 임원들의 연봉이 공개되고, 하도급업체와 거래하는 관행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엔 비상이 걸렸다. 11월쯤 법안이 시행되면 오너를 비롯해 기업 내 핵심 간부들의 연봉이 모두 공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연봉 공개를 법으로 강제하는 법안이 이렇게 빨리 통과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연봉 공개도 문제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앞으로 소송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엔 상당한 비용 증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 이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정무위가 모범적 국회 운영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고,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도 "뜻깊은 결과물을 내놓아 흐뭇하다"고 했다.

정무위는 앞으로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제재,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한 부당 행위 제재, 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 제도 개선 등과 관련된 법안도 처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