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순국 103주기를 맞는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의 공판 기록 중 3분의 2 이상(68%)이 일제에 의해 은폐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는 안 의사 유해의 행방을 밝혀줄 단서인 사형집행 보고서도 포함됐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20일 "현존 뤼순(旅順) 법원의 안 의사 공판 관련 기록은 전체 173건 가운데 55건만 공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후 일본 관동도독부 관할이던 뤼순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순국했다.
일제가 숨긴 기록에는 △이토 히로부미 의전비서관과 주치의 등 저격 현장에 있던 이토 측근에 대한 조서 △안 의사의 배후 조직과 관련된 한국인 조사 문건 △구류장·송치서·회답서 등 공판 진행 관련 문건 △'안중근전(傳)' 등 안 의사 관련 자료 △사형 집행 보고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공판 진행 과정을 밝혀줄 중요한 기록이 사라진 것이다.
일제가 은폐한 공판 기록 중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의 원제가 '유서(遺書) 동양평화론'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이 글이 처음부터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쓰였다는 의미다. 이 위원장은 "사형 집행 보고서에 안 의사 유해 처리에 대한 언급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중근전'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의 문건이다.
안중근 공판 기록 대부분이 의거 103년이 지나도록 공개되지 않은 사연은 이렇다. 그간 안중근 연구자들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소장한 '안중근 등 살인 피고 공판 기록'(55건 수록)을 1차 자료로 활용했다. 국편이 이 기록을 소장한 경위는 불명확했는데, 최근 국편 김현영 연구관이 국편 수장고에서 '길림 신경 봉천 여순 대련 사료채방 복명서'란 문서를 발견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1939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修史官補)였던 다가와 고조(田川孝三·1909~1988)가 작성한 문서였다. 다가와는 여기서 '자료 수집차 뤼순 법원을 방문해 안중근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법원 서기에게 등사(원본에서 베껴 옮김) 송부를 의뢰했음'을 밝혔다. 국편 소장 공판 기록은 바로 이때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태진 위원장이 다가와의 '복명서'에 기록된 등사 의뢰 목록과 '살인 피고 공판 기록'을 대조한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뤼순 법원은 173건의 공판 관련 문건 중 55건만 경성(서울)으로 보냈다. 조선총독부 산하 일본 학자에게도 제대로 기록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이 위원장은 문서 118건의 은폐 이유에 대해 "일본에서 영웅으로 추앙된 이토의 최후에 대한 증언을 숨기려 했고, 안 의사 배후에 있던 대한의군(大韓義軍)의 존재를 감춰 개인적 거사로 몰아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