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쪽 항구 칼레에 서너 차례 간 적이 있다. 차를 갖고 영국에 가려면 들르게 되는 도시다. 열차로 영불(英佛) 해저터널을 건널 때 칼레에서 차를 싣는다. 인구 7만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항구지만 550년 전에 지은 요새가 있고 옛 시가지도 남아 있다. 로댕은 14세기 영국과의 백년전쟁 때 칼레를 구한 시민 여섯 명을 조각품 '칼레의 시민들'로 빚어냈다. 여행자들은 시청 광장 로댕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칼레시 축구팀은 회사원, 가게 주인, 수리공, 정원사 같은 동네 아저씨들이 주전 선수였다. 밑바닥 팀만 모인 4부 리그에 속했다. 2000년 프로·아마 팀들이 출전하는 FA컵 대회가 열렸을 때 칼레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칼레팀이 쟁쟁한 도시를 연고지로 둔 1부 리그 팀을 잇달아 꺾자 유럽이 들끓었다. 낭트와 맞붙은 결승 때는 대통령까지 경기장에 나왔다. 칼레는 결승에서 2대1로 졌다. 그 뒤로 약팀이 강팀을 연파하는 것을 '칼레의 기적'이라고들 했다.
▶한국판 첫 '칼레의 기적'은 전남 신안군 사치분교 농구팀이 1972년에 일궈냈다. 목포에서 뱃길로 네 시간을 가던 사치섬의 아이들은 사과 궤짝을 쌓은 농구대에 짚을 뭉쳐 만든 공으로 연습했다. 소년체전에 나선 사치분교가 장충체육관에서 강팀을 이겼던 날 교사와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목놓아 울었다. 섬마을 아이들은 도시팀을 차례로 눌러 준우승을 했다. 대통령이 아이들을 청와대로 불렀고 나중에 영화로 찍어 어린 관객들을 또 울렸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4부 리그팀 브래드퍼드 시티가 프로팀 토너먼트 '캐피털 원 컵' 결승에 올랐다. 도박사들이 점친 이 팀 우승 확률은 1만분의 1이었다. 브래드퍼드는 준결승에서 프리미어(1부) 리그 애스턴 빌라를 따돌렸다. 팀 별명 '싸움닭'에 걸맞게 투지가 놀라웠다. 선수들은 "역사를 만들자"고 다짐했고 종료 호루라기가 울린 뒤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영국 프로축구는 1부 리그 20개, 2~4부에 각각 24개 팀이 있다. 4부 리그엔 더러 '깡통팀'도 있다. 워낙 성적이 나빠 스폰서가 떠나고 빚만 쌓인 팀이다. 브래드퍼드 선수 중엔 가게 점원, 목사도 있다. 선수 몸값을 다 모아도 1300만원이 안 된다. 애스턴 빌라는 구단 값만 1500억원이다. 4부 선수를 흔히 '피라미'에 비유한다. 이번엔 프리킥이나 코너킥처럼 약속된 플레이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났다. 몸값만으로 사람 얕보다 큰코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