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 대림동에 사는 김모씨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캐피탈, 고객님은 6%에 990만원까지 대출 가능합니다. 전화 주세요."
속칭 '김미영 팀장'으로 통하는 불법대출 안내이거나 보이스피싱 문자인 것 같았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김씨는 당시 몇 십만원의 생활비조차 아쉬운 형편이었다. 전화를 걸자 텔레마케터는 "대출은 3개월 뒤 가능하고 우선 스마트폰을 한 대 개통해 신용 등급부터 올리자"고 했다.
또 "스마트폰 요금은 낼 필요 없고 3개월 뒤 해지하니 피해를 볼 것도 없다"며 "가입 사례금 20만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왜 스마트폰부터 개통해야 하는지 의아했지만 김씨는 "20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는 팩스로 요구 서류를 보냈다. 4개월 뒤, 김씨는 통신사로부터 250만원의 요금 청구서를 받았다. "내가 사용한 것이 아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스마트폰 한 대에서 250만원의 요금이 나올 수 있을까. 지난 2011년 6월부터 '통신 범죄' 추적을 전담하고 있는 KT '형사업무팀'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통신범죄 수법을 살펴봤다.
◇"스마트폰 한 대로 4000만원 요금 사기"
타인 명의 스마트폰은 범죄자들에게 현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스마트폰 한 대를 개통해 놓고 돈을 '빼먹는' 수법은 순서와 방식이 정해져 있었다. 우선 타인 명의 스마트폰 한 대가 개통되면 가입자를 식별할 수 있는 유심(USIM)을 먼저 뽑아낸 뒤, 휴대폰 본체는 대당 30만~50만원을 받고 밀수출 조직에 넘긴다. 다음 단계로 유심을 다른 휴대폰에 바꿔 끼우거나 수백 개의 유심 칩을 프로그램에 넣어 한꺼번에 돌려 각종 소액결제(30만원 이하)를 발생시킨다. 주로 현금화하기 쉬운 게임 아이템 등을 구입한 뒤 이를 다시 할인해(속칭 '깡') 현금을 챙긴다. 해외 도박사이트에 접속해 스마트폰으로 사이버 칩을 구입한 뒤 이를 국내에서 재판매하기도 한다.
불법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아 국제전화를 마음껏 이용하게 하는 조직도 있었다. KT형사업무팀이 찾아낸 한 조직은 '30분당 6000원'의 가격에 불법 국제전화 영업을 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대리운전 업체 등에 문자메시지 한 건당 6~7원씩 계산해 전화번호 정보를 넘긴다. 여기에 스마트폰 분실보험까지 가입해 놓으면 분실 보상금까지 챙길 수 있다고 한다. KT 형사업무팀 임창수 조사실장은 "타인 명의 스마트폰으로 대당 200만~300만원을 뽑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며 "타사 적발 사례까지 보면 스마트폰 한 대로 최대 4000만원까지 요금과 결제액을 발생시킨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과정은 기업형으로 이뤄진다. 작년 9월 KT형사업무팀이 서울 쌍문동의 한 텔레마케팅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7명의 20대 남녀 직원이 금융사·통신사에서 빼낸 고객정보를 이용해 스마트폰 가입을 권유하고 있었다. 당시 이들은 사무실을 10개월째 운영하며 약 10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KT 관계자는 "최근 조폭들이 개입하고 있는데 그들이 느끼는 위험(risk) 대비 수익률은 거의 마약과 비슷하다"며 "이들은 타인 명의 스마트폰을 많게는 2000~3000대, 적게는 400~500대씩 모아 소위 '작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연간 1500억원이 조폭들 주머니로…
KT는 지난 2011년 미납요금 발생을 막고, 고객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형사업무팀을 신설했다. 통신기술을 이용한 범죄는 해킹을 통한 소액 결제에서 인터넷 개설 사기까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심 복제까지 가능해졌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통신 3사를 합쳐 연간 1500억원의 통신 범죄 피해액이 발생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서울 서대문 지역 50여명의 노인 가구에 사용하지도 않은 게임 이용료 15만원씩이 청구됐다. 외부 해킹을 통해 인터넷 전화의 발신번호를 조작해 고객들에게 요금을 발생시킨 것이었다. 이들은 남의 돈으로 구매한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재판매해 수익을 챙겼다. 경찰이 밝혀낸 전체 피해 규모는 3억7000만원에 달했다.
고가의 사은품을 노리는 범죄도 많다. 지난 7월 부산 부전동 일대에 인터넷 133개 회선이 개통된 뒤 요금 수납이 되지 않아 확인해 보니 한 불법대부업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133명을 인터넷에 가입시키고 사은품만 챙긴 사례였다. 이 업자는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인터넷 공짜로 쓸 사람'을 별도 모집해 이들의 집에 인터넷을 설치해줬다. 매월 내야할 요금은 내지않았다.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인터넷 장소 제공' 검색어를 입력하자, 대상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중 한 명은 "지난 1년 동안 LG 인터넷을 썼는데 끊겼다"며 "KT나 SK 인터넷 깔아주면 부가요금 발생시키지 않고 잘 쓰겠다"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올려놓고 있었다.
◇사은품 없애고, 본인 확인 철저히 해야
통신회사들의 지나친 가입자 유치 경쟁이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른 측면도 크다. 포털 사이트에는 '인터넷에 가입하면 10만~4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게시판 광고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인터넷 설치 장소 제공자는 "나는 공짜로 인터넷을 써서 좋고, 가입자는 40만원씩 사은품을 챙겨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수원에선 두 달 동안 1만 번이나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해 1700만원어치의 문화상품권을 챙긴 40대 남성이 700만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대리점이 아닌 '판매점'을 통한 휴대폰 유통 방식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KT에서 지난 1년간 적발한 23건 176명의 스마트폰 사기 범죄의 경우 판매점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었다. 특정 통신사 가입자만 받는 대리점과 달리 판매점은 3개 통신사 구분 없이 가입자를 유치하고 한 대 개통할 때마다 지급되는 보조금(판매촉진금) 30만~50만원을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류만 있으면 아무에게나 스마트폰을 개통해주고, 때로는 사기단과 직접 연계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 때처럼 통신 상품에 가입할 때도 본인 확인 절차를 철저히 하고,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막는 등 통신회사들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