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을 2년여 앞둔 2010년 11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 진보집권플랜', 과거 같으면 같은 정당이나 정파 내부에서 은밀하게 돌려 읽었을 법한 '집권 플랜'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책을 쓴 사람은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 내부 인사가 아니었다. 한 인터넷 신문의 대표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회·경제 민주화와 교육, 남북문제, 검찰 등에 대해 묻고 답하는 대담 형식인 이 책은 소위 '진보의 집권을 디자인한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에 담겨 있는 주장은 간단하다. 2010년 6·2지방선거처럼 민주당과 진보당이 연대해 재집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창한' 제목 때문인지 조국 교수는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야권에 집권 플랜을 제시한 주요 인물로 떠오른다. 실제로 얼마 동안은 그가 '디자인'한 대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가 이뤄지고, 총선까지 치러진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통합진보당은 4·11총선 과정에서 불법선거 운동과 민주노동당 구당권파와의 갈등으로 인해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구상한 플랜은 연합의 한쪽 파트너가 깨지면서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 교수는 멈추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그는 "이제 통합의 대상은 안철수"라며 직접 야권 단일화 3단계 방안을 제시하는 등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러나 결국 헛발질이었다. 최종 결과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이었다.
'조국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곱지 않았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한 칼럼에서 "진보 진영의 조국 교수에 대한 이상 환호와 기대"에 대해 "무엇이 진보인지, 무엇이 진짜 집권의 길인지 묻지 않고 오로지 연합, '명망 활용' 같은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조 교수는 '내용'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나 '문화'를 보여줬을 뿐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책에서 드러난 통일이나 경제, 복지에 대한 구상은 인터넷 게시판 댓글 수준이고, 무조건 연합해서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밖에 없다"며 "대담자인 오연호씨가 조 교수에 대해 평가한 것은 외모와 학벌밖에 없는데 과거 2007년 문국현 현상 때처럼 조 교수를 대선 후보로 띄워보려는 것 아니었나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강남에 살고, 서울대를 나왔으며,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는 점에서 강남좌파라는 비판을 받을 때도 인터뷰 등을 통해 "강남에 사니까 보수적이라고 하는 것은 기계론적 접근이다. 나는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강남 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으로 맞받아쳤다.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은 그에 대해 "재수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만약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면 '진보집권플랜'은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공동대표는 "이 책은 '보수는 악(惡)이고 진보는 선(善)'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는 전제에서부터 이 시대의 정신이나 정서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조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실패 원인에 대해 '민노당과의 연정이 아니라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같은 정책을 제안해 진보의 분열을 가져왔다'는 진단을 내리는데, 이에 대해서도 최 대표는 "잘못된 진단에 따라 '진보가 결집하면 집권할 수 있다'는 잘못된 구상이 도출됐고, 이는 민노당·통합진보당과 함께 치른 총선에서 패배하며 일찌감치 오류 판정이 났다"고 말했다.
'진보집권플랜'에서 거명한 2012년 대통령 후보 명단에 문재인 후보가 거의 거론되지 않은 점도 놀랍다. 오히려 조 교수는 대담에서 "문재인은 정치인으로 입신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문 후보뿐 아니라 안철수 교수에 대해서도 "이분들이 정치로 뛰어들 것인가에는 다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권력의지 말입니다"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와 대담자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책에는 자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2012년, 늦어도 2017년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진보집권플랜'의 유효기간이 2017년까지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