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발표된 새누리당 비례대표 명단 속에도 역시 없었다. 무려 아홉 차례로 나눠 발표했을 정도로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지역구 공천도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 공천자 중에 "어, 새누리당이 이런 사람을…"이라고 놀랄 만한 화제의 인물은 없었다.
새누리당 후보 중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은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맞상대가 된 '사상 딸내미' 손수조 정도다. 그러나 손 후보도 새누리당이 발탁한 카드로 보긴 어렵다.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스물일곱 살 사회 초년생이 '내 연봉 3000만원으로 선거 뽀개기'라는 당찬 구호를 내걸고 선거판을 누비는 모습이 언론의 주목을 끌면서 스스로 후보 자리를 꿰찬 경우에 가깝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이번 총선 공천이 중요한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점은 한두 사람 입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었다. 박 위원장이 멀찌감치 독주(獨走)하던 대선 구도는 안철수 바람이 휘몰아친 작년 말 이후 급변했다. 이제는 박 위원장이 앞서 가는 안철수 교수와 뒤를 바싹 쫓는 문재인 고문 사이에 끼여 협공을 받는 처지로 바뀌었다. 새누리당도 한나라당이라는 정든 이름을 버리고 새 명찰을 달지 않고는 총선을 치르기 어려울 만큼 궁지에 몰렸다. 박 위원장도 새누리당도 활로(活路)를 열려면 '특권 상류계층'이라는 한나라당 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했다. 그러자면 이번 공천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모습을,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스럽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고르고 포섭하는 역량(力量)을 선보여야 했다.
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새누리당 안에는 박 위원장을 견제할 만한 힘을 갖춘 비주류 세력이 없다. 박 위원장 구상대로 거리낌 없이 공천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과 상대평가 대상인 민주당의 공천이 죽을 쑨 것도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에겐 대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민주당은 뚜렷한 주인이 없는 집단지도체제에 가깝기 때문에 당내 여러 세력이 나눠 먹기식 공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 그런 결과가 나왔다.
오래전부터 정치권과 언론은 새누리당이 텃밭인 서울 강남 벨트와 비례대표 후보에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궁금하다고 떠들썩했다. 박 위원장이 풀어야 할 시험 문제가 미리 공개돼 있었던 셈이다. 해답을 찾을 시간도 충분히 주어졌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이 제출한 답안지엔 엉뚱한 답변들이 적혀 있었다. '컴컴한 곳'도 마다 않고 궂은일에 앞장설 것 같은 '한나라당스럽지 않은' 인물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에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4년 만의 복수'가 될 것이다. 박 위원장의 측근 상당수가 2008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었다. 그 공천에 대해 박 위원장은 "(대선 경선에서) 저를 도운 게 죄인가요"라든지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자극적인 어록(語錄)을 쏟아냈었다. 칼자루 주인이 친박(親朴)으로 바뀐 이번 총선 공천에선 친이(親李)들이 대신 눈물을 흘렸다.
친박은 박 위원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충성도가 높은 조직이다. 그러나 뭔가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2012년에 맞는 대선을 치르려면 신세대 감각에 맞는 선거전략을 짜고, 홍보전을 펼칠 전문가들을 충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곤 했다. 새누리당 공천자 명단엔 그런 면면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새 사람을 발굴하기 힘들었다면 친이 진영 사람을 '재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었을 것이다. 친이 진영엔 야당을 향해 대포를 쏘고 기관단총을 겨눌 말싸움꾼도 몇 명 있었는데 모두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들 중 한두명만이라도 구제했다면 박 위원장은 자신의 그릇 크기를 재평가받는 부수 효과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4년 전 총선 때 친이 진영은 530만 표차 대선 승리에 취해 자기들끼리 전리품 나누듯 공천을 했다. 그것이 정권 내내 부담을 준 집안 싸움의 씨앗이었다. 친박은 잘못된 공천의 후과(後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들도 4년 전 공천에 비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작품을 내놨다.
박근혜 위원장은 12월 대선이 자신의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 마지막 도전의 성패(成敗) 여부는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거둘 성적표에 의해 적잖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박 위원장이나 친박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이번 공천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박 위원장이나 친박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내재적 접근'을 해 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