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생전에 제작한 '비밀 테이프'의 마지막 45시간 분량이 24일 공개됐다. 보스턴에 있는 '케네디 도서관·박물관'은 케네디 재직 시절 만든 총 248시간 분량의 녹음테이프 중 암살당하기 이틀 전인 1963년 11월 20일까지 녹음된 부분을 공개했다. 케네디는 생전 최측근에게도 알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대화를 녹음하라고 지시했다. 대부분의 백악관 직원은 테이프가 있다는 것도 몰랐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 전모를 드러내던 1973년 7월에서야 테이프의 존재 사실이 알려졌다.
케네디는 당시 참모들이 베트남전과 관련해 각각 다른 분석과 전망을 내놓자 증거 차원에서 녹음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테이프에서도 케네디는 합참 특별보좌관인 빅터 크루락과 국무부 조셉 멘든홀 자문관을 삼자대면 형식으로 만나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을 추궁한다. 크루락은 "지금의 미국 군사력과 사회적 지지가 지속된다면 베트남전은 미국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멘든홀은 "내가 이야기해 본 사람들은 사이공과 후에 등에서 학생들까지 베트콩의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우려하더라"며 어둡게 전망했다. 케네디는 "도대체 같은 나라에 다녀온 사람들이 맞는가"라고 물었다.
1963년 11월 20일 수요일. 케네디는 일정 보고를 받으면서 "브리핑 책자를 토요일(23일)까지 준다고 하지만 오전 7시까지는 돌아와야 하고 케이봇 로지(주베트남 대사)를 일요일에 만나야 하니까… 텍사스에 들고 갈 자료를 좀 준비하라"고 했다. 마지막 녹음이었다. 이보다 하루 앞선 19일 녹음된 테이프에서 케네디는 인도네시아 국방장관과의 회담 일정을 잡으면서 "월요일(25일)? 아… 그날 굉장히 힘든 날(tough day)인데. 화요일(26일)로 하지"라고 말했다. 케네디는 22일 댈러스에서 암살당했고 인도네시아 장관은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은 린든 존슨이 대신 만나야 했다.
케네디는 또 1963년 9월 17일 주(駐)소련 미국 대사 포이 콜러와 만난 자리에서 "소련도 달에 사람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면 미국과 소련이 함께 달에 가는 협정을 맺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토록 격렬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1957년 인공위성, 1961년 유인우주선 첫 발사를 소련에 빼앗기고 달에 인간을 보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었고 이런 경쟁의 피로감을 케네디가 빗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