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자신의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을 사회에 돌려주는 방식을 빌려 본격적인 정치권 진입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권의 잇단 '정치참여' 요구에 대해 '공헌과 나눔'이라는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로 답했다. 이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 선언보다 훨씬 더 극적인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사표 같은 안철수 서신

안 원장이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은 자신의 재산 사회 환원 결심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안 원장의 정치적 소신을 밝힌 '출사표' 같다는 인상도 줬다.

14일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사진은 지난 9월9일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마지막 강연 때의 모습.

안 원장은 '나눔과 희망'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하면서 "제가 이룬 것은 저만의 것이 아니다"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고 했다. 그는 "전쟁의 폐허와 분단의 아픔을 딛고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해 온 우리 사회가 최근 큰 시련을 겪고 있다"면서 "건강한 중산층이 무너지고 젊은 세대들이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어 "국가 사회가 일거에 이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더 혜택받은 입장에서 공동체를 위해 공헌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할 때"라고 했다.

안 원장 측은 "재산 환원은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했지만, 기업인이나 교수의 삶을 넘어서서 정치인 안철수의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의 재산 환원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준한나라당 대표 등 기업인 출신 정치인들이 정치적 고비마다 발표했던 사재 출연과 다르지 않다. 재산 환원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 원장의 경우 평소 사회적 공헌을 강조해 왔고 자신이 직접 일군 기업을 사회에 돌려준다는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관망속 독자 세력화 가능성

안 원장의 발표는 회사 직원들조차 예상치 못한 '깜짝 이벤트'였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안 원장이 개인적으로 고민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의 '야권 통합신당 참여' 요구와 '독자 신당 창당설' 등이 쏟아지는 시점에서 발표가 나온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인 만큼 재산 환원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재산 환원을 이슈화함으로써 야권의 '통합신당 참여' 압박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안 원장은 그동안 야권의 러브콜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었다. 사회적 약자 배려를 강조해온 안 원장이 최근 안철수연구소의 주가 급등으로 적잖은 심적 부담을 느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 원장의 정치 참여 시점은 내년 이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 원장은 최근 "나는 의사를 그만둘 때도 6개월을 고민했고, '안철수연구소' CEO를 그만둘 때는 1년을 고민했다"고 주변에 말했다 한다. 정치 참여 시기와 방법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안 원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섣불리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지 않다. 우선 대학 일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안 원장이 신당 창당을 택할지, 야권행을 택할지도 관심사다. 여권에선 "안 원장이 정치를 하더라도 꼭 야권으로 간다고 보는 것은 오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 측 관계자는 "안 원장은 상식에 기초해 판단하는 분"이라며 "자신의 대권을 위해 신당을 만들기보다는 야권 통합이라는 대의를 따를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중도를 표방하는 안 원장이 당장 야권으로 가기보다는 총선 이후 독자 세력화를 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