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경제 위기는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이 분리되기 전까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사진>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그리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확산하고 있는 유럽의 경제 위기에 대한 어두운 진단을 내놨다.

그린스펀은 9일 뉴욕의 사교 클럽인 니커보커 클럽 강연에서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남부와 북부 유럽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하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말했다. 남부 유럽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지중해를 낀 스페인·그리스·이탈리아, 북부 유럽은 독일·스위스 등을 가리킨다.

그린스펀은 "남부 유럽의 문화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반면 북부 유럽은 엄격함과 절제를 높이 친다. 뿌리 깊은 문화적 차이가 있는 두 지역을 하나로 묶는 전례 없는 통합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델이었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의 통제 아래 유로라는 하나의 통화를 쓰는 '유로존'에 편입된 남부 유럽 국가들의 국채는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팔려나갔다. EU의 신뢰도를 등에 업고 빚을 얻어 쓰기 쉬워졌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부채를 계속 부풀리면서 과거보다 더 흥청망청 돈을 썼고 그 결과 더 이상 상환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린스펀은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경제가 실패하기는 너무 거대하다(too big to fail)고 여겨왔지만, 이제는 구제하기엔 너무 크다(too big to bail)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U는 이탈리아·그리스 등 '클럽메드(Club Med)' 국민들이 독일인처럼 행동하리라는 잘못된 전제 위에 설립됐다"라고 말했다. '클럽메드'는 '지중해 클럽'이란 뜻인 동시에, 유명한 리조트 체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 회원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위기가 미국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나"라고 묻자 그린스펀은 "유럽과 미국의 주가가 전례 없이 강하게 연동돼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 자체는 유럽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는 정치권의 분열을 꼽았다.

재정 적자 감축안을 내놓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12명이 활동 중인 이른바 '수퍼 위원회'가 초당적 해결책을 내놓기로 한 마감일(11월 23일)에 맞춰 타협안을 도출할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그린스펀은 "나의 의장 시절에도 타협은 절대 안 된다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원칙은 양보 못해도 전략은 타협하자'는 유연한 입장이었다. 당시 미국 의회는 중간층이 많아 일봉낙타의 등 모양이었다면, 지금은 양 극단으로 의견이 몰려 '타협 불가'를 주장하고 있어 쌍봉낙타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