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당직자가 소속 의원들을 따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최소한 '이것만은 안 된다'는 묵계(默契)가 있었다. 이 묵계가 본격적으로 깨진 것은 이번 18대 국회 들어서다. 보좌진·당직자가 상대 당 의원들에게 거리낌 없이 막말을 하고 무력시위의 최전선에서 활개 치는 상황의 근본적인 책임은 누구보다 국회의원들 자신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불문율' 깨진 국회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외통위 앞 복도에서 야당 보좌진·당직자 50여명에게 둘러싸여 "거짓말쟁이" "이완용"이란 막말과 야유를 들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지난 2일 외통위 소회의실에서 민주당 의원 보좌진으로부터 고함과 삿대질을 당했다. 사건 직후 민주당 의원이 김 전 의장에게 사과했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작년 12월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다 민주·민노당 보좌진으로부터 "쥐XX" "X구멍이나 핥아라"는 말을 들었다. 한나라당과 함께 예산안을 처리하려 했다는 이유였다. '국회의원을 제외하곤 본회의장 출입문 안까지 들어가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이때 깨졌다. 당시 일부 보좌진이 출입문 안쪽 복도까지 난입해 여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아섰다.
6선의 홍사덕 의원은 "예전에는 보좌진·당직자가 상대 당 의원들에게 무례하게 하면 소속 의원이 먼저 호통을 쳤다"고 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예의는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18대 국회 들어서는 보좌진·당직자가 상대 당 의원들을 폭행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2009년 3월 미디어법 등 쟁점 법안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민주당 당직자에게 로텐더홀 계단에서 레슬링 장면을 연상케 하는 목조름을 당했다. 2009년 7월엔 민주당 강창일·노영민·김영진 의원 등이 한나라당 의원 및 보좌진과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었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한나라당 보좌진·당직자에게 목을 눌리는 폭행을 당했다.
◇"운동권 출신 때문" vs. "불통 여당 때문"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의 보좌진·당직자들은 현재 9일째 외통위 전체회의실을 점거하고 있다. 약 15명이 '24시간 점거조'를 편성해 절반은 회의장 안에서, 절반은 바깥에서 문을 틀어막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검문'하고 있다. 민주·민노당 의원들은 외통위원이 아니어도 그냥 통과다.
8일 정오쯤 남경필 위원장이 진입하려 하자 이들은 앞을 가로막고 묵언(默言) 시위를 벌였다. "도대체 누구인데 주인을 못 들어가게 막느냐"고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일각에선 "한·미 FTA를 적극 반대하는 민주당 A의원, 민노당 B의원실에서 집중적으로 외통위 회의실에 보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좌진·당직자까지 폭력과 막말이 난무하게 된 데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운동권 출신 보좌진이 대거 국회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운동권 출신들이 의원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관계자는 "압도적인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3년 연속 날치기 예산안을 처리하는 등 '불통(不通) 여당'이 되면서 불가피하게 몸싸움에 나설 때가 있다"고 했다.
◇폭력 사태 후 의원들이 유야무야시켜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의원들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에서 보좌진·당직자에 의한 폭력 사건은 일반 형법으로 처벌하게 되어 있으나 벌금형 이상은 거의 없다. 의원들이 합의를 통해 유야무야시키기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오히려 폭력의 '무풍지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좌진·당직자의 폭력·막말 사건에 대해 소속 의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정치학)는 "국회의장이 직권을 발휘해 폭력을 행사한 보좌진 처벌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