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위원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갑자기 몰아친 '안철수 바람'의 영향권 아래서, 그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박근혜한나라당 대표가 처음으로 선거 지원에 나선 가운데 치러졌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선거와 내년 선거는 무관하다고 선(線)을 그었지만, 사람들은 내년 대선의 퍼즐 한 조각을 미리 맞춰 보는 기분으로 선거를 지켜봤다.

범(汎)야권 박원순 후보의 득표율은 53%,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득표율은 46%, 격차는 7%포인트였다. 2002년 대선 때 서울지역 득표율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 51%,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44%, 격차는 역시 7%포인트였다. 이번 선거는 '이회창 대세론'과 '노풍(盧風)'이 충돌했던 2002년 대선 때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에서 치러졌고, 결과도 비슷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서울 빼고 8곳 시장·군수 선거에서 모두 이겼으니 패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친박(親朴)진영은 "박 전 대표가 영남·충청권 선거의 판세를 뒤집어 놓았다"면서 '박근혜 대세론'은 건재하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유권자수가 1800만명인 수도권에서 7%포인트 득표율차는 투표율 70% 기준으로 90만표에 해당한다.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보다 유권자수가 2.5배 많은 영남에서 표차를 좀 벌려 놓는다 해도 수도권에서 7% 지면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된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비(非)수도권에서 10만표 남짓을 이겼지만 수도권에서 7% 밀리면서 최종 결과는 2.3%포인트차, 표수로는 57만표차 패배였다.

친박(親朴)은 불과 두세 달 전까지 철옹성처럼 보였던 '박근혜 대세론'이 상처 입은 현실이 화가 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 바람'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폄하하거나, 당초 예정에 없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문에 안철수 바람이 불었다는 원망을 늘어놓기도 한다.

박 전 대표의 수치상 지지율은 지난 3년 동안 30%대에 고정돼 있었다. 야권 차기 주자들과의 가상대결에서도 늘 더블 스코어로 앞서곤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에 대한 체감(體感) 지지율은 지난 1년여 사이 상당히 나빠지고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 성향이었던 수도권 40대 전후 유권자들의 박 전 대표에 대한 분위기가 확연하게 안 좋아졌다. 4년째 지속되는 대세론 자체에 대한 피로감에다, 대세론이 비단옷이라도 되는 양 오물이 튈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친박 진영 분위기가 유권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정치인의 대세론이라는 것도 경쟁상대와의 여론조사 결과로 평가된다. 그동안 박 전 대표의 가상대결 상대로 꼽혔던 야권 주자들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이완된 지지를 자신의 지지로 흡수하는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박근혜 대세론이 실제보다 부풀려진 상태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치무대에 안철수라는 '진짜 임자'가 등장하자 박 전 대표의 실제 경쟁력이 드러난 것이다.

올 초부터 야권(野圈)의 선두주자는 두세 달 단위로 교체됐다. 연초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1위였다가, 4월 재·보선 이후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선두에 나섰고, 7월부턴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손 대표와 각축에 나섰다. 친야(親野) 성향 언론, 특히 온라인 매체들이 야권 내 잠재 주자들을 차례차례 띄워 보며 박 전 대표와의 경쟁력을 테스트해 본 것이다.

이처럼 진보진영에선 5년 단위 대선 때마다 보수진영 후보의 대세론을 무너뜨리기 위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2002년 대선 때 이 메커니즘은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이인제 필패(必敗)론'을 확산시켜 노무현이라는 대안을 찾았고, 그 대안으로 '이회창 대세론'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대세론' 상대로 같은 CEO 출신인 '문국현 카드'를 세일즈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 메커니즘은 유시민→손학규→문재인→…으로 계속 카드를 바꿔 꺼내며 박근혜 대세론의 적수를 찾았다. 만일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없었다면 '안철수 바람'은 내년 4월 치러질 총선 때 발화점을 찾았을 가능성이 크다.

야구에서 1회에 따놓은 점수로 이기겠다며 '지키기 작전'에 돌입하면 십중팔구 경기는 뒤집어진다. 8회쯤 역전홈런이라도 맞으면 만회할 기회도 없이 경기는 끝나 버린다. 박 전 대표와 친박 진영은 예정에 없던 모의고사를 6개월 빨리 치러 '박근혜 대세론'의 현주소를 파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전열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