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야속하더라~ 가는 당신이 무정하더라~."
하춘화의 '날 버린 남자'에 맞춰 마을회관 앞뜰에서 촌로들이 흥겨운 춤판을 벌였다. 평범한 마을잔치처럼 보이는데, 춤판 한가운데 진짜 하춘화가 있었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계천마을. 고추 농사와 겉절이 배추 판매로 살아가는 90명의 아담한 시골 마을이 26일 종일 들썩였다. 가수 하춘화(56)가 아버지 하종오(93)·어머니 김채임(90)씨의 합동 구순(九旬) 잔치를 마을회관에서 연 것. 이미 서울에서 잔치를 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고향마을 나들이도 시켜드리고 동네 어른들도 대접하고 싶다"며 둘째 딸 하춘화가 직접 제안했다.
"낙지는 금방 질겨지니까 빨리들 드셔요." 하춘화는 식탁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불낙전골에서 낙지를 건져주는 등 고향 어르신들 시중을 들었다. 계천마을은 아버지가 태어나 결혼 전까지 살던 곳. 어머니는 영암 옆인 강진 출신이다.
"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 영도예요. 하지만 스물한 살 때 목포 공연을 가다가 처음 들른 뒤 아름다운 산수(山水)와 인심에 흠뻑 빠졌죠."
하춘화는 지금까지 총 200억원가량을 사회에 낸 '기부 여왕'으로 알려졌지만, 영암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가 1971년 발표한 '영암 아리랑'이고, 최근 영암 배경의 신곡 '월출산 연가'도 발표했다. 그가 1976년 세워준 영암 낭주고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고등학교로 성장했다. "어젠 학교 가서 아이들과 만났는데 어찌나 눈망울이 초롱초롱한지 몰라요. 전교생 200명 모두에게 사인해서 보내주기로 했어요. 팔 아파도 꼭 해야죠."
주민 전종식(71)씨는 "(하춘화는)근처를 지날 때면 잊지 않고 들렀고, 마을회관에 노래방 기계를 기증하고 후원금도 건네고…. 남몰래 우리 마을을 숱하게 도왔다"고 했다.
잔치 소식에 마을 아낙들은 장을 보고 전날 자정이 넘도록 음식을 장만하는 등 내 일처럼 도왔다. 민성숙(56)씨는 "잔치 음식 준비하고 차리고 치우는 게 보통 일 아니다"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아, 그럼 우리 식구 잔치하자는데 어찌 가만있겄소?" 김일태 영암 군수도 찾아와 "좋은 날을 위해 하늘도 준비해준 것 같다"며 날씨가 좋다고 했다.
잔치의 흥은 점심 뒤 장기 자랑이 열리면서 절정에 달했다. 하춘화가 '영암 아리랑'과 '날 버린 남자'로 분위기를 돋우자 주민들이 무대로 몰려나오면서 흥겨운 댄스장이 됐다. 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트로트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들던 하춘화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언제 이렇게 노래 불러보겠어요? 부모님뿐 아니라 저도 고향의 에너지 듬뿍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