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에서 보여준 달콤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고 일렉트로닉 프로젝트 그룹 '더블유 앤 웨일(W&Whale)'의 새 앨범 '서커스(Circussss)'를 듣는다면 당황할지도 모른다. 전자음은 날것처럼 거칠어졌고, 비트는 가슴을 울릴 정도로 쿵쿵대며, 여성 보컬 웨일의 목소리는 몰라보게 날이 서 있다. 이런 강렬함은 1번 트랙 '벌레스크'부터 타이틀곡 '브레이크 잇 다운'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유지된다.

'더블유 앤 웨일'은 2008년 1집 타이틀 '알피지 샤인(R.P.G.Shine)'이 한 대형 통신사 광고 음악으로 사용돼 히트한 것을 계기로 '일렉트로닉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번 앨범은 2009년 3월의 1.5집에 이어 2년4개월 만에 나왔다. 미니앨범이라고 해서 노래 한두 곡과 리믹스로 채웠을 것이라 지레짐작해선 안 된다. 따끈하게 막 나온 여섯 곡은 2000년대 초반 일렉트로니카의 대세였던 경쾌한 라운지 뮤직보다 오히려 1990년대풍의 무거운 테크노 사운드에 더 가깝다.

더블유 앤 웨일은“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왼쪽부터 한재원·웨일·배영준·김상훈.

이 그룹의 구성은 독특하다. 90년대 중반 '마녀, 여행을 떠나다'와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같은 잔잔한 노래로 사랑받았던 듀오 '코나' 출신 배영준(기타), 한재원(건반), 김상훈(기타)으로 구성된 그룹 '더블유(W)'에 보컬 웨일(본명 박은경)이 가세한 프로젝트 팀이다. 최고참 배영준(42)과 웨일(26)의 나이 차이가 16살일 정도로 멤버들의 나이 편차도 심하다. 최근 본지와 만난 멤버들은 "함께 노래한 지 벌써 4년째이다 보니 프로젝트팀이라는 걸 종종 까먹는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 대해 '너무 센 것 아니냐'고 하자 김상훈은 "록 스피릿(Rock Spirit)을 좀 살려봤다"고 했다. "음악이 갈수록 액티브해지고 있다고 평가해주시는데 사실 저희가 그렇게 생겨먹었어요.(웃음) 대중이 듣는 것보다 늘 반발짝 앞서겠다는 게 저희 목표예요."

한재원은 "언뜻 대중에게 불친절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즐겁지가 않은데 음악적인 시류를 의식하면서 노래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2008년 통신사 광고 삽입곡의 인기는 '더블유 앤 웨일'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배영준은 "그땐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음악감독에 몰두하느라 실감 못했지만, 돌아보니 아무래도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일로 돈을 벌고 지명도도 얻어)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죠.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니까요.(웃음)"

'더블유 앤 웨일'은 연주와 노래·작사·작곡을 자급자족하는, 요즘 가요계에선 '희귀종'으로 평가받는다. 멤버들이 "만들어 놓은 노래가 너무 많아 처치 곤란하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그 하소연은 '정규 2집 발매가 임박했다'는 예고로 들린다.

"거의 마무리됐습니다. 제목은 살짝 알려 드릴게요. '거울' '건스모크 발렌타인' '엘레지의 여왕'… 정말 다양한 노래들이 실립니다. 아주 신나거나 아주 우울한 노래까지요."(배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