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푸르른 날에'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날아오른다. 수상하고 나서 18개월 만이다. 10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초연하는 이 연극(정경진 작·고선웅 연출)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드라마다. '안 봐도 비디오'일 것 같은 전형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연습실에서 미리 본 무대 언어는 희곡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즐겨! 즐겨!"

빨간 옷을 입은 연출가 고선웅은 연습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외쳤다. 5·18을 중심으로 진동하는 이야기에 몰입해야 할 배우들에게 즐기라니, 괴로울 법한 주문이다. 그런데 연극은 만화적인 과장과 웃음으로 여러 번 출렁였다. 고선웅은 "연극은 놀이라서 즐기지 않으면 칙칙해진다"며 "우울한 주제를 우울하게 접근하면 안 되고, 희극도 때론 진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극‘푸르른 날에’는 남녀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를 겹쳐서 보여준다. 왼쪽부터 정혜 역의 정재은과 양영미, 여산(오민호) 역의 이명행과 김학선.

예컨대 차를 마시는 장면. 3m의 기다란 탁자에 마주 앉은 남녀 사이에 찻잔과 청첩장이 내던지듯 미끄러졌다. 그러면서도 대사는 점잖게 "드시지요?"였다.

'푸르른 날에'는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김학선)이 딸이자 '조카'였던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열린다. 기억은 30년 전 전남대 학생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그의 애인은 전통찻집 주인 윤정혜(정재은)이고, 정혜의 남동생은 5·18 와중에 전남도청에서 숨진다.

극공작소 마방진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역동적이다. 종종 들려주는 북소리는 힘차면서 애잔했다. 고선웅은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랑과 이별, 딸의 결혼이 겹쳐지는 이야기가 좀 통속적이지만 젊은 세대가 호응할 수 있게 푼다"고 했다. "지난 시대의 아픔이 요즘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희극적 장치는 거기까지 닿기 위한 일종의 워밍업입니다."

무대는 2층 구조다. 중심이 되는 공간은 수직적으로 올라왔다 내려오면서 탁자·옥탑방·반지하 방·감옥 등으로 변신한다. 낭만적이면서 비극적으로 쓰이는 연못도 있다. 관객에 따라 불편할 대목도 있겠지만 여산과 정혜가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과 결혼식의 신부 입장은 기대할 만하다. 연출가는 "만나는 기운을 보며 캐스팅을 하는데, 이번 남녀 주인공은 호흡이 좋다"고 했다.

'푸르른 날에'의 중요한 재료 중 하나는 다도(茶道)다. 서정적이지만 드라마의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게 약점이다. 희극적으로 매만진 이 드라마가 요동치는 새끼줄 같은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 개막까지 닷새 남았다.

▶2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