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방위산업 비리를 근절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출범하는 행사에 최근 방산 비리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방산업체 사장에게 축배 제의를 맡긴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방위사업청은 다음 달 4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국방 통합원가 시스템 시범체계 개통식'을 가질 예정이다. '국방통합원가시스템'은 방사청이 방산업체들과 연계해 해외에서 구매하는 부품 등의 원가자료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뒤 국세청 등의 검증을 거쳐 원가를 산정하는 전산시스템이다. 일부 방산업체들이 부품 원가를 적정가보다 지나치게 높이거나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산 비리가 잇달아 발생하자 방사청이 투명성을 높이겠다면서 추진한 사업이다.

이 행사에는 방위사업청과 국방부 주요 간부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 계획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서 방산업체를 대표해 노대래 방위사업청장과 축배 제의를 하도록 예정된 사람은 방산업체 L사 사장 이모씨다. 이씨는 현재 방산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 신분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지난해 L사와 협력업체들이 해외에서 무기 부품의 단가를 부풀려 구매하는 방법으로 차액을 국외로 빼돌린 혐의에 대해 수사했다. 당시 L사의 이씨 전임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회사 간부였던 이씨도 숨진 전 사장의 지시를 받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역대 방산비리 중 최대 규모였다.

검찰은 수사결과, L사와 일부 협력업체들이 2006~2010년 함대유도탄 사업 등 정부 발주 사업을 하면서 부품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남긴 97억여원을 국외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 중 58억여원을 유출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씨와 L사 법인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방산 비리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게 방산 비리를 척결하는 행사의 축배 제의를 맡긴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1심 재판 중이긴 하지만 엄연히 형사 피고인 신분인데 피해자 신분인 방위사업청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