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이 저렇게 흘러가는데, 시간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구나(日月逝矣, 歲不我與).
서태지 노래 '환상 속의 그대'를 연상케 하는 이 문장은 주자(朱子)가 '권학문'에서 '젊어서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인용했던 것이다. 원전은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이지만 공자(孔子)가 한 말이 아니었다.
공자도 예수처럼 '세 가지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장소는 광야가 아니라 시정(市井) 한가운데였고, 유혹을 건넨 자는 유혹의 대상인 공자와 흡사한 외모를 지녔던 정치꾼이었다.
춘추시대 말인 기원전 505년, 노(魯)나라 실권자 계씨(季氏)의 가신이었던 양호(陽虎=양화)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3년 동안 국정을 농락하면서 숱한 책에 악인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사기(史記)' 공자세가는 그가 공자와 특별한 악연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공자가 비천했던 젊은 시절 한 연회에 참석하려고 하자 그를 쫓아냈던 경호원이 양호였다. 훗날 공자가 광(匡) 땅에서 주민들에게 포위당해 죽을 뻔했을 때 그 이유는 "저자는 우리를 괴롭히던 양호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공자가 잠시 노나라의 국정을 맡았다는 기록이 있고 이 얘기는 주윤발이 나오는 공자 영화에서도 멋지게 등장하지만, 사실 별 실권이 없는 자리였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이들은 "공자가 그렇게 열망하면서도 아무 지위를 얻지 못한 사실은 점점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쿠데타에 성공한 양호가 공자에게 손길을 뻗친 것이다. 이건 또 왜? 공자의 학단은 혈연과 무관하게 학식과 능력으로 무장한 사인(士人)의 원형이었고, 양호 역시 사인의 또 다른 원형인 가신 출신이었다.
양호는 당연히 공자를 통해 그 많은 인재(제자)들을 포섭하려 했을 것이다. '논어' 양화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양호가 공자를 만나려 했으나 공자가 만나주지 않자 공자가 없는 틈을 타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낸다. 대부(大夫)가 사(士)에게 선물을 보냈을 때 집에서 받지 못하면 직접 찾아가 사례하는 것이 당시 예법이었다.
양호의 정치적 손길이 탐탁지 않았던 공자는, 여기서 '논어' 전체를 통틀어서도 대단히 놀라운 방법을 쓴다. 양호의 집을 살피다가 그가 외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양호에게 답례하러 쏜살같이 집을 나섰던 것이다. 자, 그자가 집에 없어서 돌아오면 그만이다….
하지만 꼼수에 있어서라면 학자는 정치인을 당해내기 어렵다. 양호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길 한복판에서 공자와 딱 마주쳤다. 서로 닮은 거구의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 바라보는 광경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양호는 '세 가지 유혹'을 꺼낸다. ①보물을 품고서도 나라를 어지럽게 버려두는 걸 어질다고 할 수 있는가? ②일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자주 때를 놓치는 걸 지혜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비수와도 같은 마지막 말. ③해와 달이 저렇게 흘러가는데, 시간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공자는 두 번째 질문까지 "아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정치를 합시다'라는 마지막 유혹에 대한 답변은 '사탄아 물러가라'가 아니었다. "알겠소, 내 장차 벼슬을 하겠소(諾, 吾將仕矣)." 그 말에서 이 에피소드는 갑자기 끝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장(將)'이란 글자를 먼 미래로 보느냐 가까운 미래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정반대가 된다. 대부분의 책에 나온 대로 전자라면 '언젠가 제대로 된 세상이 오면 정치를 하겠다'는 거부의 의미다. 그런데 후자라면….
그렇게 보는 학자도 있었다. 앙리 마스페로도 그랬고 가이즈카 시게키(貝塚茂樹)도 그랬다.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고 싶었으나 세월만 흐르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공자가, 정치꾼의 집요한 권유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얘기다.
그 뒤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일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짐작할 만하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해도, 정치적인 유혹을 뿌리침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법이다. 때론 실패하고 나서도 '장(長)'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